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71. 건달에 대하여

서 량 2016. 10. 17. 07:10

불교와 힌두교 신화에 건달바(乾達婆)라는 신이 나온다. 건달바는 원래 범어, 즉 고대 인도어의 간다르바(Gandharva)를 중국인들이 그 말 소리를 살려서 한자로 바꾼 단어다. 중국에서 불교를 직수입한 한국사람들이 성미가 급해서인지 건달바의 끝말을 썩둑 잘라낸 후 건달이라 불렀다. 간다르바는 범어로 변화무쌍하다는 뜻이다.

 

건달은 불교에서 상상하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살며 매일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무슨 악기인지 모르지만 악기를 기가 막히게 연주해서 제석천(帝釋天), 즉 천황(天皇)의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했단다. 건달은 내 인생경험에 의하면 고등학교 뺀드부 출신이면서 희랍 신화로 치면 뮤즈(Muse)에 해당된다.

 

건달은 음식도 비타민도 먹지 않고 늘 세상 방방곡곡 향기만 찾아 먹으면서 살았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식향(食香)이다. 게다가 그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며 구름의 운행조차 맡아 주관하고 뭇 인간들의 신혼 첫날 밤 신부 자궁 속에 잠입하여 임신을 하게 해주는 재주마저 부렸다 하니 정말 푸짐하게 변화무쌍한 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음악에 재질이 있어서 악기도 잘 다루고 노래도 잘하는가 했더니 남의 향기를 먹으면서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른다. 백수건달(白手乾達)은 막일을 하지 않아서 손이 하얗게 고운 건달이라고나 할까.

 

한량(閑良)은 옛날 조선시대에 벼슬자리를 얻지 못한 무과(武科)에 속하는 양반을 지칭했던 말이다. 빈둥거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건달에 비해서 한량은 그래도 돈푼 깨나 있고 오지랖이 넓기 때문에 시시때때 기생집을 드나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건달을 영어로 'bum'이라 한다. 이 수상한 단어는 건달 말고도 부랑자, 놈팡이, 게으름쟁이로 번역되는데 건달처럼 살가운 뉘앙스가 없어서 한참 싱겁다. 차라리 무직자라는 뜻의 독일어 룸펜(Lumpen) 'bum'보다 미운 살이 덜 뻗치는 게 아닌가 하는데.

 

부랑자라는 의미로는 'punk'를 빼 놓을 수 없다. 당신은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유행하던 펑크록을 기억하는가. 'punk'는 사전에 날라리라고도 나와있더라. 날라리란 태평소라 불리는 리드(reed) 악기로서 꽹가리 만큼이나 화려하고 강렬한 음색의 국악악기다.

 

건달도 한량도 날라리도 양아치보다야 상급이다. 양아치는 '동냥아치'의 준말이기 때문이다. 현대감각으로 거지에 해당한다. 우리말에 들어가는 ''는 장사치나 꽁치, 멸치에서처럼 사람이나 생선을 얕잡아 부르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듣기에 썩 좋지 않은 말이에요.

 

양아치만 해도 벌써 폭력적인 요소가 있다. 깡패라는 말은 더더욱 폭력을 연상시킨다. 깡패는 영어의 'gang'과 우리말 ''가 합쳐진 합성어. 'gang' 'go'의 현재진행형 'going'의 고대영어. ''는 당파(黨派), 할 때 쓰는 한자어 파()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파싸움을 패싸움이라 하지.

 

깡패, 불한당, 양아치, 조폭, 등등 폭력을 일삼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영어에 많다. 고전적 영어로 'hoodlum'이나 'hooligan' 같은 말들이 있지를 않나. 모자 달린 운동복을 입은 불량배를 뜻하는 '후디(hoodie)'의 '후' 소리가 들어가는 단어, 이른바 영국의 홍길동에 해당하는 로빈 후드(Robin Hood)의 바로 그 후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건달 김병연(1807~1863), 방랑시인 김삿갓이 대나무로 만든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안 영국의 로빈 후드는 '후디건'으로 얼굴을 감추었다.

 

건달이라는 말의 내력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봤다. 결단코 건달을 미워할 수 없는 당신과 나의 건달끼 사랑을 숨기지 못하면서.           

 

© 서 량 2016.10.16

-- 뉴욕중앙일보 2016년 10월 1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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