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움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이른바 한 사람의 미운 살이 이렇게 하늘까지 뻗치는 수도 있구나, 하는 궁금증이 내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누가 밉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밉다는 것이 예쁘다는 형용사의 반대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지는 2016년 11월이다.
당신이나 나나 예쁜 것을 좋아하고, 예쁘지 않은 것을 싫어하며 미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생각!
그만큼 증오심은 주관적인, 너무나 주관적인 편견이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는 분명 주관이 뚜렷한 인간들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만 해도 그렇다. 버젓히 의대를 졸업한 지성인들의 국제적인 편견이 참 대단하다. 사람은 늘 자기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분노심(忿怒心)을 집단적으로 부추기는 상황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했다. 성낼 분, 성낼 노, 마음 심이라고 옥편에 나와있는 이 한자어에는 마음 심(心)자가 세 번이나 들어간다.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인 것을. 사람 마음처럼 변하기 쉬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성낸다는 말의 어원을 찾아봤다. '성(性)을 낸다'는 말은 한자어와 우리말의 합성어! 당신은 내 말을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면 성낸다 할 때의 성(性)은 성생활(性生活)할 때 쓰이는, 섹스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품성 성', 즉 사물이나 사람의 기본적인 성품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성을 낸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바닥에 깔린 동물적이고 난폭한 근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우리의 근본적인 품성에는 어떤 상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고픈 개처럼 화부터 내는 기질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여움'은 한자와 우리말의 합성어다. 노여움은 '노(怒)여움'에서 유래했다. 노(怒)는 문자 그대로 종 노(奴)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그림이라고 옥편은 친절하게 해명한다. 게다가 종 노(奴) '는 '계집 여'에 '또 우'의 합성어라는 점에서 아주 미묘한 의미가 있다. '또 여자의 마음'?
한자어는 인류역사 차원에서 세상에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대변한다. 성을 낸다는 것을 여자들의 특징으로 치부하는 것은 합당한 사고방식이 아니다.
미움이라는 뜻으로서 영어에 'hatred'가 있다. 이 단어의 깊숙한 뿌리 속에는 기원전 5000년 전에 사용됐다고 추정되는 전인도 유럽어에서 미움, 질시 외에도 '슬픔'이라는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당신은 상기하기를 바란다. 일찌기 프로이트는 우울증이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라는 해석을 한적이 있다. 곧 죽어도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프로이트의 지혜와 용기가 부럽다.
'Time is money'. 라는 짤막한 말을 한 사람은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100 달러 지폐 가운데에서 서글서글한 눈매와 투실투실한 얼굴을 드러내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그의 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즉, 'Haste makes waste (성급하면 손해 본다)'라는 명언! 나 또한 급한 성미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말을 뇌까리지만, 며칠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워낙 성급한 사람들이 자주 좌절하다가 우울증이 쌓이면서 이윽고 기다렸다는 듯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분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들은 왜 이다지도 때를 다퉈 분노하는가?
성급하면 분노하고 분노하면 증오한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당신과 나의 신경 증상이다. 우리 모두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허한, 아주 공허한 상념에 빠지는 2016년 11월 말 으스스한 날씨에 몸을 떤다.
© 서 량 2016.11.27
-- 뉴욕중앙일보 2016년 11월 3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컬럼| 276. 친숙과 경멸 (0) | 2016.12.26 |
---|---|
|컬럼| 275. 생일 파티 (0) | 2016.12.13 |
|컬럼| 273. 위대한 미국 (0) | 2016.11.13 |
|컬럼| 272. 내스티 우먼 (0) | 2016.11.01 |
|컬럼| 271. 건달에 대하여 (0) | 2016.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