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대해서 연구했다.
촛불은 양초, 하는 초와 불이야! 할 때의 불이 합쳐진 합성어다. 발음 편리상 초불이 촛불로 변했다. 비물이라 하지 않고 빗물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초는 한자어 '촛불 촉(燭)'에서 유래했다. 전구의 60촉, 100촉 하는 바로 그 '촉'이다. 초는 촉에서 기억자가 없어진 말이다. 말을 아끼자면, 촛불이라 하지 않고 그냥 '촉'이라 해도 뜻이 확실하다.
촛불이라는 단어는 중언부언한 말이다. 늘 과잉을 좇는 우리는 역전(驛前) 대신 역전 앞이라 하고 처가(妻家)라 하지 않고 처갓집이라 하지를 않나. 똑같은 말을 전격적으로 되풀이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들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사상이 진작에 죽어버린 요즘 세태에 당신과 나는 차라리 과장법의 독액(毒液)에 배를 적시고 싶다.
촛불을 영어로 'candlelight'라 한다. 곧이곧대로 말하면 'candlelight'는 촛불이 아니라 '촛빛'으로 옮겨야 한다. 촛불은 뜨거운 불에 착안점을 뒀지만 'candlelight'는 빛이 사물을 밝게 비춘다는 점에 그 하이라이트가 있다.
당신은 시방 너무 성급하게 걱정하지는 말거라. 내가 이 판국에 촛불을 촛불이라 하지 말고 '촛빛'이라 하자며 손에 촛불을 쥐고 광장에 출두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촛불에서처럼 불에 악센트를 두고 뜨거움을 밝히는 우리들 사고방식에 비하면 서구인들은 확실히 환한 빛을 독려한다. 추위를 타기 잘하는 우리의 감성과 어둠을 꺼리는 그들 기질과의 대조가 섬찟하게 느껴지는 2016년 12월이다.
독일의 시성 괴테(Goethoe)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 "좀 더 빛을! (More light!)"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요컨대 당신은 그가 죽기 전에, 몸이 추우니까 이불을 덮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신이 말하기를, "빛이 있으라! (Let there be light!)" 하는 구약 창세기 1장 3절은 어떤가. 신도 소돔과 고모라를 징벌하는 불보다 빛을 선호했다.
나이 지긋한 당신은 손자 손녀 생일 파티에 간 적이 여러 번 있을 것이다. 아들 손자 며느리 여럿이 몰려들어 들뜬 목소리로 해피 버스데이를 노래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귀여운 당신의 후예가 조그만 입을 오므려 촛불 몇 개를 훅! 끄는 장면도 목격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탄생을 축복하는 가장 기쁜 순간에 촛불을 끄는가. 타오르는 촛불의 격정을 죽이는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하얀 토가(toga)를 몸에 두른 희랍사람들은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 성전을 자주 찾았다. 그들은 보름달처럼 둥근 케이크를 들고 갔다. 그리고 달빛을 상징하는 촛불을 원시의 케이크에 두루두루 꽂았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이 천하에 퍼지는 장면이다. 결코 뜨거운 분노의 촛불이 아니었다.
생일 파티 때처럼, 그들은 활기찬 포획과 풍족한 일상에 대한 소망을 품었다. 그리고 절절한 소망에 집중하면서 촛불을 끈다. 촛불이 꺼진 자리에 향불처럼 피어 오르는 연기, 그 매캐한 연기가 아르테미스 여신을 향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촛불의 영혼이 승천하는 정경은 그들이 신에게 띄우는 간절한 메시지였다. 촛불을 꺼야 소원이 이루어진다.
초(燭), 'candle'과 발음이 매우 흡사한 말로 본래 12세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지역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탄생한 'kindle'이 있다. 뜻은 '불을 붙이다'! 이 말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 하지만 너무 오래 동안 불을 만지면 사고가 나는 수가 있다. 불장난 하면 오줌 싼다는 말은 불을 향한 흥분이 풀어질 때 당신의 괄약근도 함께 풀어진다는 뜻이다.
© 서 량 2016.12.12
-- 뉴욕중앙일보 2016년 12월 1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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