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70. 인격수양?

서 량 2016. 10. 4. 13:38

정신질환의 원인과 치료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비관론자라는 평을 들어도 싸다. 정신의학의 발전이 환자들에게 끼친 공적과 정신병에 대한 이해와 약물치료의 발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과는 다른 과에 비하여 학설과 논란이 분분한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가벼운 증상보다 중증(重症)인 경우에 정신과의사들은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얼마 전 한 환자에 대하여 젊은 정신과 의사와 약간 논쟁을 벌였다. 그는 환자가 안절부절하며 안달복달하는 상태를 '주의력 결핍장애 (ADD, Attention Deficit Disorder)'라고 진단을 내린 것이다. 주의력 결핍장애는 20여 년부터 유행을 탄 진단명이다.

 

그렇다. 진단에도 유행이 있다. 1950년대에 처음으로 항정신병약물이 나오자 대부분 환자들이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 항우울제가 대대적으로 시판되자 우울증 진단이 부쩍 증가했다. 마약을 듬뿍 집어넣은 각성제가 만들어지자 거의 모든 학업성적이 좋지 않은 어린이들과 심지어 어른들도 주의력 결핍장애 진단을 받는 실정이다. 병이 있고 약이 있는 게 아니라 약에 맞추어 병이 생긴다. 

 

나는 환자가 전형적인 조울증 증상이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환자는 비타민 결핍증 (Vitamin deficiency)처럼 무엇이 결핍된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조증(燥症, manic symptoms)의 과잉상태로 간주해야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무엇이 모자랄 때 그 모자란 성분을 공급해 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우리는 단순히 생각한다. 차에 개솔린이 바닥나면 주유소에 가서 개솔린을 보충하는 상식이나 다름 없다. 복잡미묘하기 짝이 없는 사람 마음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좀 억지스럽지만, 공복감을 없애주거나 균형 있는 식이요법 같은 경우는 결핍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쉽게 이론이 통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의 사랑 결핍증은 어쩌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상담사가 각별하게 사랑을 보충해 주면 된다고? 좀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인간 감정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좋은 배우자가 부모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보상해 줄 수도 있다고? 글쎄.

 

결함(defect)이라는 개념도 있다. 차로 치면 공장 결함(factory defect)이다. 물품일 경우 그 정도가 심하면 환불(refund)하기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하지만 정신과 영역에서는 아주 어렵고 복잡한 발상이다. 차라리 기형아(畸形兒)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간다. 결함은 대개 외과적인 시술을 요구한다.

 

논리의 비약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대거 유행하는 성형수술 또한 결함을 전제로 하는 의식구조다. 젊고 예쁘지 않은 상태가 결함이라는 무서운 공식이다.

 

‘defense(방어)’‘deficit’‘defect’와 마찬가지로 ‘de-‘로 시작되는 단어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물론 정상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defense mechanism (방어기전)’ 중에는 신경증상을 유발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원시적이고 질이 낮은 항목도 많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인격수양이라는 개념을 질이 좋은 방어기전에 연결시키고자 한다. 이것은 당신이 정신과의사의 도움 없이 평생을 홀로 땀 흘리며 천착하는 외로운 작업이다.

 

‘de-‘는 고대 불어와 라틴어에서 입수된 접두어로서, ‘off, away, from, down ‘처럼 묘하게 부정적인 뜻을 지닌다. 워낙 공격을 피한다는 뜻의 ‘defense’‘offense (범법행위, 모욕)’의 반대말로서 걸핏하면 전면대결을일삼는 투쟁적인 풍조에 비하여 매우 훌륭한 삶의 방편으로 보인다.

 

© 서 량 2016.10.03

-- 뉴욕중앙일보 2016년 10월 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