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69. 양파와 오이

서 량 2016. 9. 18. 06:23

당신과 나는 몸매와 건강식품 때문에 은근한 압력을 받는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균형 잡힌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는 지금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건강과 체중관리에 꽤나 신경을 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 내과의사가 체중관리와 젊음을 유지하는 식생활에 대하여 강의하는 유튜브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요즘 모든 의사들이 관심을 쏟는 'AMPK'라는 효소에 대하여 열변을 토한다.

 

'AMPK'는 당신이 한번 듣고 금방 잊어버려도 좋은 'AMP-activated Protein Kinase'의 약자. 모든 생명체 세포의 에너지 현상을 켰다 껐다 하는 이른바 '마스터 스위치' 효소다. 효소란 세포 안에서 생겨나서 생체에 일어나는 거의 모든 화학반응의 촉매 구실을 하는 희한한 단백질.

 

양파에는 '퀘르세틴, Quercetin'이라는 항산화제가 듬뿍 들어있다. 항산화제는 항상 'AMPK'를 자극한다. 그래서 퀘르세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내려주고 세포의 노화현상을 억제하고 피를 정화시켜 머리를 맑아지게 한단다. 그래서 또 'He knows his onions' 하면 그가 자기의 양파를 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정통하다'는 의미. 그리고 'He is off his onions'는 양파를 끊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는 미쳤다'는 뜻이 되는 게 우스꽝스럽다.

 

'퀘르세틴'이 많이 들어있기로는 오이의 소문도 만만치가 않다. 당신의 젊음을 위하여 오이 얼굴 마사지 말고도 매일 오이를 먹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오이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He is cool as cucumber'라는 표현은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는 아주 침착하다'는 참 쿨한 슬랭. 참고로, 냉장고나 토마토처럼 쿨하다는 말은 없다. 내친김에 하는 말이지만 1970년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의하면 날씨가 더운 날 오이의 속내는 밖의 기온보다 화씨 20도 아래라는 것을 당신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야!

 

"과년한 딸이 있다"는 말을 살펴봤다. 한자로 '過年'이라 하면 결혼 시기를 지났다는 의미. 그러나 원래 뜻대로 '오이 과'를 써서 '瓜年'이라 하면 오이처럼 싱싱하게 무르익은 혼인 적령기라는 뜻. 차제에 처녀가 오이 먹고 아이를 낳은 역사적 사실을 소개한다. 옛날 신라 시절에 최씨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집 앞마당에 큰 오이가 열렸다는 이야기. 딸이 몰래 그 오이를 따먹고 금세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자 최씨는 그 아비 없는 아이를 숲에 버린다. 딸이 그곳에 가봤더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덮어서 키우고 있는지라 아이를 다시 데려다 키운다. 이 아이가 바로 나중에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풍수지리설의 달인, 도선국사다. 엄연히 세종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기록이다이집트를 떠나 정처 없이 사막을 떠돌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옛날에 먹던 오이, 부추, 양파, 마늘을 그리워하는 구절도 구약성경 민수기(民數記) 11 5절에 나온다. 이 채소들은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의 힘을 돋구는 특식이었다.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Plinius)는 그의 저서 ‘박물지 (Naturalis Historia)에서 오이가 여성의 생리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 처녀가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다는 우리 얘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동아일보 2011.04.19 '윤덕노의 음식이야기'에서 발췌]

 

'AMPK'를 자극하는 식품 중에 당근, 인삼, 그리고 마늘 같은 것들도 둘째 가라면 서럽다. 당신도 나도 이런 것들만 골라 먹으면서 건강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누가 또 알겠어. 오이를 꾸역꾸역 먹다가 당신이 나이고 나발이고 없이 떡두꺼비 같은 아이라도 떡 하나 낳을지?

 

© 서 량 2016.09.17

-- 뉴욕중앙일보 2016년 9월 2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