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꽃이었다 해도
윤지영
꽁꽁 닫힌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벌어지지 않는 문틈 사이로
한여름의 추위가 들락거리고
밤이 오면
창가에 일렁이는 그림자 하나로
목을 축였습니다
빛과 어둠이 번갈아 찾아와 내게
홀로 피고 홀로 지는 마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번개치는 날에
꽃잎 몇 장 던져주고 제 뿌리를 지켜내는
오래된 꽃나무의 비밀도 알려주었습니다
문이 열리면
벌서던 아이 풀려나듯 배시시 웃을까
어쩔까
가슴 떨리는 그 적막이
내가 꽃이었다는 걸 믿어준다해도
굳어지는 뼈 사이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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