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이방인의 계절 / 임의숙

서 량 2016. 11. 1. 02:49


이방인의 계절


                         임의숙



풀벌레의 소리 하얗게 묻어버린 새벽

하늘엔 떫은 별빛이 한쪽으로 차갑습니다

민트향 여운이 감도는 서리의 시간

침묵은 떠 있습니다.


초록의 빛들은

노래였을까요? 울음이였을까요?

노랗고 파랗고 붉었던

나무의 휘파람은 단절되었습니다

풍란의 여름은 청춘으로 머물겠습니다만

우리가 키웠던 새의 날개가

덜거덕거리며 쇠구슬 소나기 속으로 날아갔던 동안은

긴 울림이였습니다.


잊지는 않았다고.


어느 기억 속엔들

숨 절인 미련이 남지 않을까만은

풀잎에 이슬이 구르듯

바람에 꽃잎이 뜯기듯, 순간들

지나고 보니 아름답습니다.


나무에서는 풍금 소리가 울림니다

곧 떠날겁니다

잎이 지고 잎이 마르고 잎이 구르고

한 잎 한 잎 밟히는 건반소리

어디로 갈거냐고 묻지는 않을 겁니다.

'김정기의 글동네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나무 / 임의숙  (0) 2016.12.06
배추밭 / 임의숙  (0) 2016.11.23
내가 꽃이었다 해도 / 윤지영  (0) 2016.09.18
가을 / 임의숙  (0) 2016.09.16
민달팽이 - S에게 / 임의숙  (0) 201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