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민달팽이 - S에게 / 임의숙

서 량 2016. 8. 14. 22:39


민달팽이

-- S에게


                 임의숙



물린 젖이 밋밋해지는 동안

쉰 살이 되었다


달시계의 바늘처럼

둥글게 둥글게 닳고 닳으면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


모아두고 쌓아두고 뭉쳐두었던 순간들

어느 봄 날, 홀라당 뒤집어 쓸어냈던 기억


달빛에 웃음이 고이면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어디에 벗어 놓았을까?

어렴풋이 스쳐간 소식들이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어버린 얼굴들.


여린 허리가 칡넝쿨을 닮아가는 동안

쉰 살이 되었다


한 귀퉁이의 풋풋한 농담처럼

미끄러질 듯 미끄럽지 않은 여름은

풀내음 가득한 이슬방울 이야기


울고 싶다는 누구에게는 울지말라 하고

울지 않겠다는 누구에게는 펑펑 울라고 한다


이별은 가려운 것 뿐이라고

징그럽지 않은 검버섯 주름 깊은 생각에 

흐린 날에는 등을 만져보자


어제보다는 오늘을 

내일보다는 오늘을 걷는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민달팽이는 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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