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 S에게
임의숙
물린 젖이 밋밋해지는 동안
쉰 살이 되었다
달시계의 바늘처럼
둥글게 둥글게 닳고 닳으면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
모아두고 쌓아두고 뭉쳐두었던 순간들
어느 봄 날, 홀라당 뒤집어 쓸어냈던 기억
달빛에 웃음이 고이면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어디에 벗어 놓았을까?
어렴풋이 스쳐간 소식들이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어버린 얼굴들.
여린 허리가 칡넝쿨을 닮아가는 동안
쉰 살이 되었다
한 귀퉁이의 풋풋한 농담처럼
미끄러질 듯 미끄럽지 않은 여름은
풀내음 가득한 이슬방울 이야기
울고 싶다는 누구에게는 울지말라 하고
울지 않겠다는 누구에게는 펑펑 울라고 한다
이별은 가려운 것 뿐이라고
징그럽지 않은 검버섯 주름 깊은 생각에
흐린 날에는 등을 만져보자
어제보다는 오늘을
내일보다는 오늘을 걷는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민달팽이는 느리지 않았다.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꽃이었다 해도 / 윤지영 (0) | 2016.09.18 |
---|---|
가을 / 임의숙 (0) | 2016.09.16 |
팔십일세 소녀 / 윤영지 (0) | 2016.07.04 |
개구리와 깨구락지 / 임의숙 (0) | 2016.06.18 |
쉰 살의 초상 / 임의숙 (0) | 2016.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