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무슨 잡지에서 읽은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 "슬픔을 견뎌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즐거움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산다." 나는 아직도 그 문장을 떠올리며 혼동을 일으키거나, 이거다! 하는 깨달음에 번번히 빠진다.
우리는 자주 자신의 감정상태가 기쁨인지 슬픔인지 감지할 겨를이 없을 수 있고, 그런 감정에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인식을 하지 못할 때도 많고, 자신이 그런 정신상태라는 점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면서 일상에 허덕이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사람이 어찌 순간순간마다 그토록 영특하고 예민한 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에서는 이런 정신작용을 자기관찰(self observation)이라 부른다. 뉘앙스가 좀 다르지만 '심리적 마음상태(psychological mindedness)'라는 개념도 이와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자기관찰력과 심리적 마음상태가 정신상담의 가장 중요한 골격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기관찰을 가능하게 하지? 하며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자기관찰을 위한 첫째 조건으로 우선 우리는 자신의 자아를 둘로 갈라 놓을 수 있는 능력과 습관이 필요하다.
자아를 둘로 쪼개고 나면 이런 일이 터진다. 즉 한쪽은 느끼고 행동하는 자아, 그리고 다른 쪽은 그런 자아를 유심히 살펴보는 또 다른 자아가 되는 분열현상이 일어난다. 전자를 행동자아(acting ego)라 하고 후자를 관찰자아(observing ego)라 하는데, 이렇게 자아는 세포분열을 하듯 둘로 갈라진다. 우스개 소리지만, 이쯤 되면 정신분열증이 따로 없지!
마음이 손끝으로 쉽게 만질 수 있는 실체라면 얼마나 좋을까.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정신현상이다. 우리 격언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을 모른다 했거늘 과연 우리 중에 누가 자기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능력과 습관이 있을까나.
관찰하는 자아와 관찰을 당하는 자아간에 서로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한과 북한처럼 두 동강난 자아가 서로 쓰라린 시련을 당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행동자아는 걸핏하면 관찰자아와 불화를 일으킨다. 심한 경우에 우리는 자학을 하고 자신을 혹독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불철주야 직장의 노예가 되는가 하면 자기가 자신을 대하는 똑같은 방법으로 남들을 매몰차게 취급하는 실수도 기어이 저지른다.
관찰(觀察)은 볼 관에 살필 찰, 보고 살핀다는 뜻의 한자어. 당신은 찰(察)자에 잠시 유의하기를 바란다. 지붕을 뜻하는 '갓머리' 아래에 버티고 있는 '제사 제(祭)'를 눈여겨보라. 제사는 조상을 숭배하는 의식. 그만큼 무엇을 살핀다는 것은 경건한 행동이다.
이 '찰'자는 경찰의 '찰'자와 같다. 경망스러운 태도란 결코 사물을 관찰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 뿐더러 당신을 속도위반으로 엄숙하게 정차시킨 경찰 앞에서도 함부로 까부는 게 아니다.
'observe, 관찰하다, 준수하다' 또한 라틴어의 '갓머리'에 해당되는 'ob (over, 위에서)'와 법과 질서를 따른다는 뜻의 'serve'가 합쳐진 단어. 관찰이라는 한자어에 깃들여진 보수성이 'observe'에도 똑같이 숨어있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는 굳은 표정으로 남의 의견을 물어보거나 좋은 친구나 정신과의사가 지적하는 사항에 대하여 곰곰이 반추하려 한다. 시시때때로 남의 결점을 들먹이거나 스캔들에 심취하면서 몰래 얼굴을 붉히며 자신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양심적인 소시민들이다.
당신의 자아 속에 공존하는 자신과 남, 주관과 객관, 자식과 부모, 그리고 남성적 기질과 여성적인 성향 사이에 너그럽고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기를 기원한다.
©서 량 2016.08.20
-- 뉴욕중앙일보 2016년 8월 2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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