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65.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서 량 2016. 7. 25. 06:42

2016 7월 셋째 주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듣는 사람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 한 말은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이었다. 이 표어는 1980년에 로널드 레이건을 40대 대통령으로 만든 아주 유명한 공화당의 슬로건!

 

'다시' 위대해지고 싶은 소망은 과거에 위대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또 지금은 위대하지 않다는 좌절감을 내포한다. 미래를 위한 진취적 행동을 꾀하는 듯하면서 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드는 향수심을 피할 도리가 없다.

 

당신은 기억할지도 모른다. 1968년에 당시의 한국관객을 눈물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흑백영화를. 연이어 2, 3편이며 대완결편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이 아니라 '미워도 다시 여러 번'으로 제목을 바꿔야 할 판이였던 신파 멜로드라마. 이건 마치도 로큰롤 가수가 무대 위에서 멜로디가 쉬운 후렴 부분을 관중이 합세하여 반복적으로 부르게 할 때 자꾸 소리치는 one more time! (한 번 더!)"을 연상시킨다.

 

이때 당신은 '한 번'이라는 가벼운 권유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생만사가 한 번에서 그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성이 싱싱하고 늘씬한 자태의 여성에게 식사나 한 번 하자고 했을 때 어디 그게 딱 한 번에서 그치는 만남을 시사하는가. 남녀간에 한 번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중저음이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가수 김동률의 2001'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라는 히트곡 제목을 '다시 한 번 사랑한다 말할까'로 바꾸면 어딘지 모르게 불성실하게 들린다.

 

김민수의 '우리말 어원사전' '다시'가 한자어 '多時(여러 번)'에서 유래했다고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선 말기 1903년에 저자 미상으로 쓰여진 '동언고략(東言考略)'이라는 우리말 어원사전 책에 그런 해석이 있는 것을 김민수는 인용한다. 그 책은 우리말 대부분이 중국어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황당한 사대주의 사상이 얼마 전까지 우리를 지배한 것이다.

 

'again' 'against'는 고대영어에서 같은 뜻으로 쓰였다. 'again' '다시'라는 뜻으로, 그리고 'against' '거슬러, 반대해서'라는 의미로 분리된 것은 16세기 초기였다. 영어에서 'among' 'amongst', 또는 'amid' 'amidst'에서처럼 마치 형용사의 최상급처럼 단어 끝에 공연히 'st'가 붙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뜻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again' 'against'가 예나 지금이나 서로 같은 뜻이라고 당신이 바락바락 우겨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트럼프 표어의 마지막 단어 'again'에는 현재상황이 마음에 거슬려서 사태를 바꾸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우리의 '미워도 다시 한 번'도 밉고 역겨운 처지를 거슬러서 어떤 인간적인 시도를 해보겠다는 심리상태다.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또한 한 남자가 그리움의 근원지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의 표출이다.

 

우리는 '반복강박'이라 불리는 신경증세에 시달린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에 적용되는 이 현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시 또 다시 거듭거듭 반복되는 지구와 천체의 운행방침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당신과 나는 한갓 천체의 술렁임에 몸을 맡긴 채 자맥질을 계속하는 아프도록 애절한 반복행동에 머물러 있는지도 몰라. 때때로 크게 웃으면서 때로는 가벼운 흐느낌으로 저 광활한 우주에 시시각각 귀의하는 생명현상들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 서 량 2016.07.24

-- 뉴욕중앙일보 2016년 7월 2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