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병동장으로 내가 일하는 정신병동에서 팀장을 하는 사회복지사(social worker), 낸시(Nancy)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녀와 나는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듯하면서도 성격적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경우가 잦은 사이다.
밤 사이 병동에서 생긴 일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심리학자와 간호사를 포함한 직원 대여섯 명 앞에서 환자를 인터뷰 하거나 치료 방법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일정이 아침 8시 45분 회진 시간. 양키들도 나도 격식 있는 발언보다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는 소탈함을 선호한다.
낸시는 되도록 많은 말을 하려고 애를 쓴다. 어느 회의석상이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말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문장의 길이 또한 길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저 말이 언제 끝나나, 하며 기다리는 수가 많다.
그녀는 환자에 대한 말을 하다 말고 자기 사생활에서 일어나는 혼자만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거나 자기 과거의 화려한 기억을 떠올리며 상처에 붕대를 감듯 거듭거듭 둘러댄다. 맡은바 소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신의 사적인 진면목을 보여주면서 남들을 감화시키려는 사람이 가끔씩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당신 주변에도 그렇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보스턴 대학 사회학 교수 찰스 더버(Charles Derber)는 그의 저서 'The Pursuit of Attention (관심의 추구, 1979)'에서 'Conversational Narcissism (대화상의 나르시시즘)'이라는 개념을 발표해서 만인의 공감을 받았다.
그는 우리가 대화를 할 때 가능한 한 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로 유명하다. 대화의 흐름이 물의 흐름과 같다면 당신과 내가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 하는 것만이 문제라면 문제다.
어느 할리우드 여배우가 했을 것 같은 우스개 소리가 있다. "Enough about me. What about you? What do you think about me?" -- "내 얘기 고만 해요. 당신은 어때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마트폰으로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와 급히 보내는 e메일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 붐비는 페이스 북을 방황하는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가 결핍된 시대를 살고 있다. 남에게 관심을 주기보다 남에게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필사의 경쟁을 벌인다.
낸시는 논리가 딸리면 얼른 화제를 바꾼다. 그런 수법만큼 유효한 화술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남의 말을 막아버리거나 핵심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을 못 들은 척한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미흡한 표현을 세련되게 교정해주는 우월감을 보이고 내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한 발언을 역으로 인용해서 나를 공격한다.
더버는 대화에 있어서 상대의 말에 대한 반응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째는 shift-response (바꾸기 반응). 이를테면 "아, 배고파!" 했더니 "나는 좀 전에 밥을 먹었어!" 하며 화제의 주인공을 바꾸는 반응. 둘째로는 support-response (지지 반응). 배고프다는 사람에게 "뭘 좀 먹어야 되겠네!" 하며 상대를 지지해주는 반응.
'conversation'은 1511년부터 성행위와 동의어로 쓰이다가 1570년에 대화라는 의미로 완전히 변했다. 그러니까 더버의 'conversational narcissism'이라는 개념에는 성교를 할 때 상대를 싹 무시하고 자기 사정만 털어놓는다는 뜻이 숨어있는 셈이다.
© 서 량 2016. 05.30
-- 뉴욕중앙일보 2016년 6월 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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