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63. 동물근성

서 량 2016. 6. 28. 11:23

야크 팽크세프(Jaak Panksepp, 1943~ )는 현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비교해부학, 약리학, 그리고 생리학을 전공하는 수의학 교수로서 '정신생물학자'로 손꼽히는 석학이다.


그는 오래 전에 실험실 쥐의 배를 간질여서 쥐가 초음파로 깔깔 웃는 소리를 사람 귀에 들리도록 녹음한 동영상을 만든 일로도 유명하다. 쥐뿐만 아니라 원숭이와 개나 새가 웃는다는 사실을 이젠 누구나 받아들인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라는 말은 농담이 아닌 과학적인 발언이다.


팽크세프는 1992년에 '감정 신경과학(affective neuroscience)'을 창시했다. 동물 뇌를 실험하며 사람 뇌의 기능을 평생 비교연구해 온 그는 포유류와 인간의 기본감정을 7가지로 분류해서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1. Seeking (추구) --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감정상태. 추구의 대상은 음식일 수도, 이성(異性)일 수도, 또는 학구적 호기심의 과녁일 수도 있다.


2. Lust (욕정) -- 동물적인 색정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불교에서 일컫는 오욕(五慾), 다섯 가지 욕심이랄 수도 있다. 식욕, 색욕, 수면욕, 재산욕, 그리고 명예욕.


3. Fear (공포) -- 생명체는 위험에 처하면 그 자리에 얼어붙거나 들입다 줄행랑을 친다. 공포는 제거해야 할 정서라기 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한 보호책의 일환이다.


4. Rage (분노) --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치다가 궁지에 몰린 쥐처럼, 때에 따라 우리는 무서움과 괴로움의 대상에게 사생결단으로 덤벼든다. 이판사판의 경지!


5. Care (애착) -- 욕정을 배제한 순수한 사랑이다. 가장 여성적인 모성본능이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위하여 발휘하는 애타심과 자기희생 정신이다.


6. Grief (슬픔) -- 슬픔은 정상적인 인간조건이기도 하다. 사람 마음을 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빠진 의사들은 이것을 우울증이라 일컫는다.


7. Play (장난) -- 당신이 걸어가는 삶의 그 어느 길목에서 한 순간 장난스러운 무드에 빠졌을 때 당신은 팽크세프의 실험실 쥐처럼 유쾌하게 웃어대지 않았던가.


불교교리에 나오는 칠정(七情)은 어떤가. (), (), (), (), (), (), ()! 이 일곱 가지 정서를 영어로 옮기면 'play, rage, grief, seeking, care, fear, lust'가 된다. 물론 팽크세프 식의 사고방식을 십분 적용시킨 번역이다.


팽크세프는 이 7개 중 가장 으뜸가는 감정을 'seeking (추구)'라 주장한다. 사람 마음에 발동이 걸리는 순간 어떤 동기의식이 생겨난다. 그것은 새나 사슴이나 사자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가장 원초적인 행동이랄 수 있을 뿐더러 마치도 봄이 되면 모든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는 아름다운 자연현상이다.


숨바꼭질을 'hide-and-seek'라 한다. 술래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의 끊임없는 호기심에 대하여 호감을 느끼는 당신이다.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정신상태가 내뿜는 기대심의 기쁨은 또 어찌하는가.


팽크세프보다 근 20살 어린 마크 썸스(Mark Solms, 1961~ )는 현 아프리카의 케입타운 대학 (University of Cape Town) 신경심리학 과장이면서 신경정신분석 (Neuropsychoanalysis)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설립했다. 그는 팽크세프와 단짝이라는 인상이 들 정도로 서로간에 의견을 같이한다.


팽크세프와 썸스가 주장하는 동물근성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학설에 나도 열렬히 합세한다. 당신과 내가 비록 오욕칠정의 지배하에 나날을 살아가지만 힘 닿는 데까지 지성을 추구하는 기쁨에 흠뻑 젖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 서 량 2016.06.27

-- 뉴욕중앙일보 2016년 6월 2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