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의 효험에 대하여 읽었다. 레몬은 항산화력이 강해서 세포손상과 노화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항암, 항염, 항독작용 또한 있어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연을.
이렇듯 우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레몬이지만, 새로 구입한 차가 자꾸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킬 때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 'My car is a lemon'에서 레몬은 '불량품'이라는 뜻이다. 월요일에 만든 차들이 그렇다는 소문이 있다.
20세기 초부터 쓸모 없는 물건이라는 뜻으로 쓰인 'lemon'은 범죄자들이 쓰는 은어로서 남들이 쉽게 주스를 빨아먹을 수 있는 '얼간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때 주스를 빨아먹는다는 어색한 번역 대신에 '등골을 빼 먹는다' 하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남을 착취하는 식성이 양키들은 식물성이고 우리는 동물성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속언에 서울 사람들의 깍쟁이 기질이나 야박한 세상 인심을 한탄할 때 '눈 감으면 코 베어 먹는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발상도 당신과 나의 왕성한 식인성(食人性)을 암시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木瓜)가 시킨다는 우리 속담을 생각한다. 모과는 환영 받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영어의 레몬과 비슷한 처지다. 생김새나 맛이 나쁘면 아예 내놓지 않으면 될 것을 굳이 다른 과일들 옆에 진열을 해 놓고 망신스럽다고 투덜대는 과일전 주인의 의식구조는 나 같은 사람에게서 비평을 받아 마땅하다. 이건 일종의 과종(果種)차별이 아닌가 한다. 사람으로 치면 인종차별이다.
레몬과 정반대로 'peach', 복숭아는 매우 긍정적인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누가 당신에게 'You are a real peach!'라 호들갑을 떤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 최고, 시쳇말로 '짱'이라는 뜻이다. 양키들의 편애를 받는 과일은 또 있다. 'Life is a bowl of cherries' 하는 관용어에 들어가는 'cherry'는 '즐거운 인생'을 대변하고 'cherry-pick', 하면 '최고를 선별하다', 쉽게 말해서 '좋은 놈'으로 골라잡는다는 표현이다.
예수 제자들 중 의사 출신 누가(Luke)는 이런 말을 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아본다. (A tree is identified by its fruit.)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누가, 6장 44절) 레몬 나무에서 레몬 나고 복숭아 나무에서 복숭아 나는 것이 뻔한 이치!
피터, 폴, 메리의 1962년 히트곡 '레몬 트리' 가사의 첫 부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이렇게 타이른다. "I fear you'll find that love is like the lovely lemon tree. -- 네가 사랑이란 사랑스러운 레몬 나무 같다는 걸 알게 될 것을 나는 걱정한단다." 연이어 반복되는 후렴 부분 가사는 또 이렇다. "Lemon tree very pretty and the lemon flower is sweet. But the fruit of the poor lemon is impossible to eat. -- 레몬 나무는 아주 예쁘고 레몬 꽃은 달콤해요. 그러나 가엽게도 레몬 열매는 먹을 수가 없어요."
레몬이 몸에 좋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요량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더니, 당신과 내가 겉만 번지르르한 과일을 밝히는 건 아니기를 바란다. 로마와 희랍 신화 시대 때부터 올리브 나무는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통해 왔다. 나는 레몬을 차별대우하는 사람들에게 올리브 가지를 치켜든다. -- I am holding out an olive branch to those who discriminate against le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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