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중 제일 으스스한 표현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득히 먼 역사의 뒤안길에서 중국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던 시절에 어떤 대단한 사람이 장작에 누워 복수를 다짐하면서 곰의 쓸개를 핥으며 노력해서 소원을 성취했다는 고사에서 왔다는 와신상담!
그는 그때 얼마나 입안이 썼을까. '와신상담'은 내가 직업상 불철주야로 전념하는 '정신상담'과 발음이 참 비슷하기 때문에 어딘지 끌리는 데가 있는 단어다.
일찍이 의학의 원조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성품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가 다혈질(sanguine), 둘째 점액질(phlegmatic), 셋째로 우울질(melancholic), 그리고 마지막 넷째가 담즙질(choleric)이다.
'sanguine(다혈질)'은 라틴어로 '피'라는 뜻이면서 유쾌하고 명랑하다는 뜻도 있는 것이 다분히 수상하다. 혹여 피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hlegmatic(점액질)'은 쉽게 말해서 당신이 감기가 들었을 때 목 속에 생기는 가래를 뜻하면서 냉정하고 침착하다는 의미 또한 있다.
당신은 이 시점에서 'melancholic'과 'choleric'이 둘 다 담즙, 즉 쓸개즙을 묘사한다는 것에 착안점을 두었으면 한다. 'melancholic'은 검은 색 담즙이고 'choleric'은 노란 담즙일 뿐 둘 다 쓸개즙인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간이 생산한 쓰디 쓴 용액이 담낭으로 가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역할에 대하여 깊이 생각 한 것 같다. 간과 담은 늘 서로를 따라다니면서 마치도 부부처럼 서로를 보완하는 사이다. 담즙질의 특징은 걸핏하면 화를 내는데 있다.
음양오행설에 대하여 얘기를 하고자 한다. 삼척동자도 알아차리는 음양설은 안과 밖, 위와 아래, 여자와 남자, 밤과 낮, 축축함과 건조함처럼 서로 상반되는 우주의 속성을 일컫는다.
오행설의 내막은 이렇다. 우주의 근간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들은 순차적인 과정을 밟아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순서대로 하면 수(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즉, 생명의 근원은 물. 물에서 나무라는 생명이 자라고, 어쩌다가 산불이 나듯이 나무에서 불이 나는가 했더니, 이내 나무는 재가 되어 흙으로 변하고, 흙이 딱딱한 금속으로 변한다. 그리고 어느 까마득한 순간 금속이 녹아 물이 되면서 다섯 요소의 변천은 다시 시작된다.
한의학에서 콩팥과 방광 같은 수경(水經), 물은 믿거나 말거나 공포를 상징한다. 무서움에 질리면 방뇨를 하는 것이 그 이치다.
간이나 담 같은 목경(木經), 나무는 분노를 대변한다. 그래서 사람이 화가 나면 얼굴이 간처럼 갈색이 되느니. 한의학에서 담과 간은 분노를 지칭하는 그야말로 와신상담의 복수심이다.
삼초(三焦)나 심장 같은 화경(火經), 불은 히포크라테스의 피 색깔이 보여주는 행복감, 혹은 그 뜨거움이다.
위나 비장 같은 토경(土經), 흙은 무어냐고? 흙은 생각이나 수심이 짙은 것을 지칭한다. 밤새도록 고민을 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얼굴이 마치도 흙처럼 '누렇게 떴다' 한다.
폐나 대장 같은 금경(金經)은 걱정을 맡아 주관한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호흡기가 부실하거나 우리말로 '똥질'이라 하는 신경성 대장염을 자주 앓는다지.
동양적인 의미에서 와신상담은 쓰디 쓴 곰의 쓸개즙을 핥으면서 노력을 거듭하는 데 있다. 그런가 했더니 서구적인 쓸개는 'melancholic'에서처럼 우울증에 빠지거나 혹은 화를 버럭버럭 내는 특징이 있다. 자, 당신은 어쩔 것인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인생경험 때문에 서구적으로 자꾸 화를 낼 것인가 아니면 와신상담이나 정신상담을 하겠는가.
© 서 량 2016.03.21
-- 뉴욕중앙일보 2016년 3월 2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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