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릴 적 무심코 지나치던 풀섶의 사마귀, 'praying mantis', 직역으로 '기도하는 예언자'는 참으로 시적(詩的)인 말이다. 이 영어단어에는 사마귀가 곤충을 잡아먹기 직전에 중세의 수도승처럼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mantis'는 'mania'와 어원이 같다. 우리는 'mania'를 굳이 번역하지 않고 그냥 '마니아'라 한다. 마니아는 전인도유럽어의 'men-'에서 유래했다. 'mental (정신적)'이라 할 때 그 'men-'처럼 '생각한다'는 뜻.
'mania'는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의 절반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소위 조울증, 'Manic Depressive Disorder'라 할 때 'manic'의 명사형이다. 14세기경에 흥분이 심하거나 망상이 생기는 정신병을 일컬었고 18세기 이후에는 어떤 단어 끝에 이 말이 붙어서 '광적인 집착'이라는 뜻의 합성어가 많이 태어났다. 이를테면 'erotomania'를 색정광, 그리고 야구에 미친 사람을 야구광이라 하듯이.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날드 트럼프를 미치게 좋아한다는 뜻으로 'Trump mania'라는 말이 생겼다. 그는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 하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미국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의지를 들먹이며 뭇 백인 보수파들을 열광시킨다.
트럼프는 2015년 여름 이후 지금껏 입버릇처럼 뇌까린다. "We are tired of being the patsy for everybody." --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얼간이 짓을 하는 게 진저리가 납니다."
'patsy'를 네이버 사전은 '남에게 잘 속는 어수룩한 사람'이라 풀이하는 뒤끝에 '봉(鳳)'이라 덧붙인다.
봉으로 안다는 표현 대신 바둑에서 상대방 돌 셋이 둘러싸고 한쪽이 쩍 벌어진 호랑이 입에 들어간 내 돌처럼 남의 밥이 된 신세를 호구(虎口)라 한다. 요즘은 호구와 고객을 합친 후 '구'와 '고'를 빼고 콧소리를 넣은 '호갱(님)'이라는 호칭이 유행이다.
트럼프는 오랜 세월을 미국이라는 호갱한테서 큰 도움을 받은 멕시코나 중국 같은 국가들이 미국을 우습게 보면서 국경을 넘거나 발칙하게 덤벼드는 실태를 개탄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직 남한을 봉으로 여기고 범 아가리로 호락호락 들어오는 호갱으로 본다. 당신 또한 그들이 우리를 'patsy' 취급을 하는 게 어찌 신물이 나지 않겠느냐.
20세기 초부터 속어로 쓰이기 시작한 'patsy'에 대하여 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즉, 'patsy'는 이태리어로 광인(狂人)이라는 뜻의 'pazzo'에서 나왔고 그들 남부 사투리로 'paccio'는 바보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미친 사람=바보'라 믿었으며 마침 또 이 말은 '파쇼(fascio)'라는 정치용어와 우리 귀에 비슷하게 들린다.
흥분하고 열광하다가 망상에 빠지고 실성해서 미친 후 바보가 된다는 사연 외에도 'mania'에 대단히 중요한 뜻 둘이 더 있다고 당신에게 정색으로 알려주고 싶다.
첫째, 'mania'에는 'rage', 분노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는 것. 둘째로, 'mania'가 흥분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기보다 훨씬 전 1250년경에 '놀다, 까불다'라는 의미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당신도 한 번 양심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까불고 날뛰다가 제풀에 분노하는 광인의 정신상태를. '놀기=까불기=흥분=열광=망상=분노=바보'로 연결되는 광증의 최종 도착지를. 그리고 '핵 마니아'의 장래를 예측하는 예언자들의 선명한 비전(vision)을.
© 서 량 2016.03.06
-- 뉴욕중앙일보 2016년 3월 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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