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가을 맨해튼 / 김정기

서 량 2023. 1. 19. 21:06

 

 

가을 맨해튼

 

                           김정기

 

 

골목들은 엎드려 있었네,

숨죽인 그대 따라

 

떠나가는 것에 익숙해진 오늘은

이방인의 굽은 등 어루만지며

흔들리는 타향도

마지막 발길에 떠내려가고

 

플라자 호텔 녹 쓴 지붕에 묻었던 가을 햇살

이제는 눈물 없이, 쓰라림도 없이 올려다보았네.

 

고개 숙인 잎도 얼굴을 들던 날

빛나는 슬픔이 몰려와 한 솔기 바람을 만들었네.

그대의 침묵이 6 애비뉴를 녹이고

깨어진 가을 달을 다시 띄우고 강물을 끓이고

백만 개 태양을 잉태하는 불씨로

살아나고 살아나서 불을 피우네

 

땅거미가 덥힌 도시의 속살을 헤집고

쇼윈도 안에 펄럭이는 옷깃

조용히 전등이 켜지네

 

© 김정기 20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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