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맨해튼
김정기
골목들은 엎드려 있었네,
숨죽인 그대 따라
떠나가는 것에 익숙해진 오늘은
이방인의 굽은 등 어루만지며
흔들리는 타향도
마지막 발길에 떠내려가고
플라자 호텔 녹 쓴 지붕에 묻었던 가을 햇살
이제는 눈물 없이, 쓰라림도 없이 올려다보았네.
고개 숙인 잎도 얼굴을 들던 날
빛나는 슬픔이 몰려와 한 솔기 바람을 만들었네.
그대의 침묵이 6 애비뉴를 녹이고
깨어진 가을 달을 다시 띄우고 강물을 끓이고
백만 개 태양을 잉태하는 불씨로
살아나고 살아나서 불을 피우네
땅거미가 덥힌 도시의 속살을 헤집고
쇼윈도 안에 펄럭이는 옷깃
조용히 전등이 켜지네
© 김정기 2015.11.18
'김정기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의 봄 / 김정기 (0) | 2023.01.20 |
---|---|
뼈의 은유 / 김정기 (0) | 2023.01.19 |
뚜껑 / 김정기 (0) | 2023.01.19 |
여름 형용사 / 김정기 (0) | 2023.01.14 |
봄의 혈관 / 김정기 (0) | 2023.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