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10. 좁은 문

서 량 2014. 6. 17. 12:43

 한국 신문에서 '앵그리맘'이라는 말을 보았다. 몇 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를 본뜬 단어로서 'angry mom'의 영어발음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란다. 요즘 한국인들은 화난 엄마보다 앵그리맘을 선호하는 눈치다.

 

 화를 내는 십대라는 뜻으로 '앵그리틴'도 있다. 영어에는 없는 콩글리시, '개그콘서트'를 줄여서 '개콘'이라 하듯이 화가 난 엄마를 '앵맘', 퉁명스러운 십대를 '앵틴'이라 하면 어떨까 하는데.

 

 'angry' 13세기에 고민한다는 뜻이었다가 14세기에 현대영어의 화를 낸다는 의미로 변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심리의 변모과정이다. 당신도 나도 결코 아닌 밤중에 다짜고짜 골을 내거나 울화통을 터뜨리지 않는다. 좌절감이 싸이고 싸여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을 때 급기야 폭발하는 행동심리가 인지상정이거늘.

 

 'anger(분노)'와 말뿌리를 같이하는 'anxiety(불안)'가 정신과 전문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4년이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사람의 심층심리 속에서는 분노와 불안의 경계가 도무지 분명치가 않다. 그러니까 당신 친척 중에 마음이 불안할 때 공연히 화를 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ang~'은 본래 좁다는 뜻이었다.

 

 1909년에 앙드레 지드(1869-1951)가 출간한 '좁은 문'을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제롬은 두 살 연상의 사촌 누이 알리사를 사랑하는 좁은 문을 선택한다. 그러나 알리사는 현세적 사랑의 즐거움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또 다른 하나의 좁은 문을 두드렸다가 짧은 생을 애석하게 마감한다. 이 무고한 두 남녀는 마태복음의 좁은 문에 대한 개인적 정의가 그렇게 서로 달랐다. 1947년 노벨 문학 수상자 앙드레 지드는 나중에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부조리 사상과 장폴 사르트르(1905-1980)의 실존주의 철학에 도달하는 협소한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건한 울림이 충만한 교회 강단을 통하여 마태는 그의 복음 713절에서 사람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숱한 사람들이 멸망의 첩경인 큰 문을 선택하는 사연을 14절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Because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s 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문은 좁고 생명에 이르는 길이 협소해서 찾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니라.)"

 

 'strait'는 올곧고 직선적이라는 뜻의 'straight'와 똑같은 발음이다. 맹목적인 도덕성과 지적인 정직성 사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성인들이 주문처럼 뇌까리는 "Strait is the gate"! 이때 'strait'는 문의 넓이에 대한 진술이라기 보다 한 사람이 어떤 특정한 문을 선택한 결과로 야기되는 인생의 자초지종과 그에 따르는 심리적인 반응을 묘사하는 형용사다. 다시 말해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어렵고 엄하고 가혹하다는 사설이다.

 

 1969년에 출현한 'straight arrow'라는 관용어가 있다. '곧은 화살'이라 직역할 수 있지만 풀어 말하면 곧이 곧대로 사는 고지식한 사람을 일컫는다. 'straight'는 또 'gay'에 상반하는 개념으로서 동성연애가 아닌 이성애(異性愛)를 지칭한다.

 

 'straight arrow'는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위에 인용한 마태복음 7 14절 처음 부분에 나오는 'strait and narrow''straight and narrow'로 와전됐다는 내막이 있다. 험난한 가시밭길보다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쳐있는 탄탄대로를 염원하는 우리의 소망이 잘 숨겨진 말이다.

 

© 서 량 2014.06.15

-- 뉴욕중앙일보 2014년 6월 1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컬럼| 213. D Words  (0) 2014.07.28
|컬럼| 212. 살벌한 양심  (0) 2014.07.14
|컬럼| 209. 미시시피의 진흙  (0) 2014.06.02
|컬럼| 208. 출생의 비밀  (0) 2014.05.19
|컬럼| 207. 거짓 희망  (0) 2014.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