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12. 살벌한 양심

서 량 2014. 7. 14. 02:00

정신분석학에서 사람 마음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삼등분 하는 것을 아마 당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초자아라는 말이 너무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점도 있고 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양심이라 부르면서 이야기를 꺼낼까 한다.

 

양심은 사람들이 살면서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도덕성을 일컫는다. 양심은 또한 우리가 순간순간 내리는 사회적 판단의 기준이기도 하다. 때에 따라 당신은 죄와 벌을 판가름하는 냉철한 검사가 되기도 하고 상황을 잘 검토해서 배심원들에게 호소하는 인정 많은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양심은 혹독한 비판과 따스한 배려가 공존하는 이상한 양면성으로 우리를 곧잘 혼동시킨다.

 

거의 매일을 신문에서 보는 사퇴(辭退)라는 단어를 찾아 보았다. 말씀 사, 물러날 퇴! 그러니까 사퇴는 직무를 중단하는 행동이 아니라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다짐하는 '말씀'이다. 미사여구(美辭麗句)에 들어가는 말씀 사처럼 사퇴는 한갓 말에 지나지 않는다.

 

'resign (사퇴하다)'은 14세기 후반에 단념한다는 뜻이었는데 'revoke (취소하다)'의 're'처럼 부정적인 의미의 접두사에 'sign '이 합쳐진 복합어다. 기독교 예식이 몸에 밴 서구인들에게 'sign'은 13세기경 손으로 이마와 가슴에 황급히 십자가를 긋는 동작을 뜻했고 15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영어의 서명한다는 의미가 생겨났다. 

 

역사적 차원에서 보면 사퇴하는 마음은 아침마다 자신의 책무를 향하여 경건하게 성호(聖號)를 긋는 행동을 멈추는 심리상태다. 심판이 경기장에서 선수를 퇴장시키는 경우에 'Out!'라 하고 우리는 '죽었다!' 하며 소리친다. 'out'도 양심처럼 양면성이 넘치는 말이다.

 

'out'의 나쁜 의미로는 예컨대 'out to lunch'가 있는데 정신이 나갔다는 뜻. 정신이 보리 동냥 갔다는 우리 속언과도 같다. 권투경기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knockout (녹아웃)'라 하고 'take someone out'는 누구를 해치우다, 즉 죽인다는 말이고 'I was left out in the cold' 하면 내가 남들한테 왕창 왕따 당한 상황이다.

 

'out'는 좋은 의미로 훌륭하다는 'outstanding'이 있고 사교적이라는 뜻의 'outgoing'도 있다. 그리고 당신이 짝사랑하는 양키여자가 'I am going out with James' 하면 그건 그녀와 제임스가 목하 연애 중이라는 뜻이며 'I took her out for dinner'는 저녁 한끼 때문에 그녀를 살해했다는 자백이 아니라 그녀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는 고백이다.

 

실망과 분노의 감정에 휩쓸려서 툭하면 관계자를 'out' 시키는 우리의 집단적 양심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양심이다. 왜들 이다지도 살기등등한 검사 짓을 하려고 눈을 치켜 뜨는가.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영혼을 구원하는 거짓말을 경찰에게 하는 밀리에르 신부의 지혜를 마다하고 우리는 왜 그를 시장(市長) 자리에서 사퇴시키는 벌을 주려고 날뛰다가 자살을 하는 자베르 형사의 잔혹성을 흉내 내는가.

 

영국의 정신분석가 제임스 스트래치(James Strachey)는 1934년에 남을 처벌하고 싶어하는 잔인한 양심을 'savage superego(야만적 초자아)'라 부르며 그 내막을 분석했다. 그리고 1963년에 시인이자 정신분석가인 도날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우리들의 성숙과정에서 흉포한 양심이 사려 깊은 양심으로 변모할 때 비로소 타인을 염려하는 포용력(capacity for concern)이 생긴다는 논제로서 당신과 나의 까칠한 자아를 끌어안았던 것이다.

 

© 서 량 2014.07.13                                                                                   

 -- 뉴욕중앙일보 2014년 7월 1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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