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9. 미시시피의 진흙

서 량 2014. 6. 2. 11:27

 2014 6 4일 한국의 지방선거를 며칠 앞둔 아침에 인터넷 신문을 읽는다. "네거티브 공세"라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진작에 우리말이 돼버린 '네거티브' 'negative campaign'의 뒷부분을 썩둑 잘라낸 표현이다. 영한사전은 이것을 '부정선거전술(否定選擧戰術)'이라 풀이한다.

 

 'campaign'은 운동 또는 유세라는 의미지만 같은 값이면 영어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네거티브처럼 영어발음 그대로 캠페인이라 옮기기도 한다.

 

 'campaign'은 고대불어 'champagne'에서 유래한 '툭 트인 시골' 이라는 뜻이었다. 옛날에 양키들이 사방을 훤히 살펴볼 수 있는 들판에서 군사행동을 했기 때문에 작전지역이라는 의미가 묻어있는 말이다. 'campus'도 라틴어로 '평지'라는 뜻. 대학 캠퍼스가 대개 넓고 펀펀하니까 그렇단다.

 

'camp'도 바로 그런 넓은 평야에 위치한 군대 주둔지라는 말이었다가 요새는 민간인들이 야외 천막 속에서 뒹굴뒹굴 먹고 자는 지역을 일컫는다. 당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캠프는 고대영어로 전쟁터라는 단어였다. 13세기에 용맹무쌍한 칼잡이 검투사를 뜻했는데 현대에는 선수권 보유자로 알려진 'champion (챔피언)'도 캠프와 같은 말뿌리다.

 

 당신이 즐겨 마시는 '샴페인''캠페인'과 어원이 같다. 샴페인은 원래 프랑스 북서부 평야지역 '샹파뉴'라는 포도주 생산 지역 이름에서 따온 영어발음이고 불어로 '샹팡'이라 한다. 지금쯤 한국에서는 선거 캠페인의 최종 챔피언임을 확신하는 후보자들이 개표가 끝나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화려한 환상에 젖어있을지도 모른다.

 

 'negative campaign (부정선거전술)'을 슬랭으로는 'mudslinging (진흙 던지기)'라 한다. 우리말의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개념. 한 사람의 생각을 비판하기보다 그의 행실을 들입다 지지고 볶는 수법이다.  

 

 미국의 선거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공격성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Mudslinging is as American as Mississippi mud.'라는 말이 있듯이 선거 때의 인신공격은 미시시피의 진흙만큼이나 미국적이다. 정신분석 차원에서 진흙은 그 불결하고 끈적한 질감이 대변을 연상시킨다. 진흙은 당신의 후각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물체를 암시한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을 모욕하는 화법 중에 이걸 능가하는 게 또 있을까.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부인이 뚱뚱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16대 대통령 링컨은 양말을 열흘에 한 번씩 갈아 신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 실격이라는 인신공격을 당했다. 그리고 1960년에 케네디의 선거 캠페인에 끼어든 트루먼은 케네디의 정적이었던 닉슨을 투표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험담을 펑펑 날렸다.

 

 안일한 일상이 권태롭다고 한다면 지나친 발언일까. 하루를 온전히 마감하고 내일을 위하여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범죄와 사고현장을 세밀하게 보도하는 열한 시 TV 뉴스를 꼬박꼬박 시청하는 우리들이다. 평화스런 뉴스보다 네거티브한 소식에 귀가 솔깃해지는 당신과 내가 아니던가. 굳건한 종교의 힘으로도 영혼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악마에게 쏟는 관심이 신을 향한 경배심을 훨씬 웃도는 사실을 어쩔 것인가.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은 자연법칙이 잉태한 어둡고 사나운 본능의 작태다. 진흙은 비단 미시시피 주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층심리 도처에 아무렇게나 깔려있다. 그 더럽고 구질구질한 진흙에서 한 송이 연꽃이 요술처럼 스르르 피어나는 정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 서 량 2014.06.01

-- 뉴욕중앙일보 2014 6 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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