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13. D Words

서 량 2014. 7. 28. 11:26

 일주일에 두 번 정신과 입원환자들에게 강의를 한다. 지난 주에는 '자아의 방어 기전' (Defense Mechanisms of the Ego)을 주제로 삼았다.

 

 왜 우리는 자신들을 방어해야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가 우리는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들이 워낙 상처를 받기 쉽기 때문에 무술 영화에서처럼 자기 몸을 방위하는 'self-defense (자기방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태권도의 기본자세를 흉내 낸다. 팔다리의 동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여서 정신건강을 보살펴야 한다고 나는 설명한다.

 

 'defense'의 동사형 'defend' 12세기경 고대불어로 무엇을 '피하다''de''충돌하다''fendre'를 합친 말이다. 서구적 호신술은 상대의 주먹에 얻어맞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몸을 피하는 행동이다. 반면에 방어(防禦)라는 한자어는 '막을 방', '막을 어', 부딪침을 기꺼이 맞이한다는 사연이 깔려있다.

 

 공격적인 서구인들은 충돌을 피하려 하고 평화를 사랑하기로 소문난 동양인들은 치고 박는 동작을 접수하는 태도가 놀랍다. 서구의 비겁한 작태에 비하여 동양의 당당한 풍모가 돋보인다.

 

 정신적 충격에 대응하는 방법 중에서 'denial (부정)'이 가장 원시적이다. 심한 경우에 이 거부반응은 'delusion (망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두 단어가 'de'로 시작하는 것을 당신은 예의주시하기를 바란다. 'de'에는 피하는 것 말고 부재(不在)라는 뜻도 있다. 'depart (떠나다)', 'deceive (속이다)', 'despair (절망)', 'devil (악마)', 'death (죽음)'도 모조리 다 'de'로 시작된다.

 

 반대 혹은 분리한다는 뜻의 접두사 'dis''de'만큼이나 부정적이다. 'dishonesty (부정직)', 'disease ()', 'discard (버리다)' 등등 나쁜 뜻으로 중뿔나게 쓰인다. 우리말 유행어 '디스하다''disrespect (실례하다)'의 흑인 슬랭 'diss'를 그대로 수입한 말이다.

 

 'dis'에서 's'를 뺀 'di'도 나쁜 의미로 둘 째라면 서럽다. 'difficult (어려운)', 'dirty (더러운)', 'dive (머리부터 떨어지다)', 'die (죽다)'도 하나같이 고약한 말들이다. 당신이나 나나 'd'로 시작하는 단어를 부디 멀리해야 될 것 같다. 실로 'd' 'damned (저주받은)' 알파벳이다.

 

 희랍어로 흩어진다는 뜻, 히브리 말로 망명이라는 의미로 외래어를 쓰기 좋아하는 글쟁이들이 원음 그대로 '다이아스포라'라 하지 않고 굳이 '디아스포라'라 발음하는 'Diaspora (주로 유대인을 뜻하지만 광범위하게는 흩어져 사는 이민집단을 의미함)' 'di'로 시작된다.

 

 'di'는 희랍어로 ' (two)'을 뜻한다. 그래서 'divide'는 나누다, 'dissect'는 해부한다는 말이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금언의 후반부에도 그놈의 경을 칠 'd'가 들어간다.

 

 자아의 방어 기전 중 내가 눈을 흘기면서 지적하는 저열한 항목으로 'denial (부정)''distortion (왜곡)'이 있다. 이 둘이 얽히고 설키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치료가 힘이 들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이 매우 골치 아파하는 'delusion (망상)'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 개의 'd'가 실타래처럼 헝클어지는 사람 마음을 지지고 볶는 내 일상이 미치광이 풋나물 캐듯 어수선하다는 느낌에 가끔씩 빠진다.

 

 

© 서 량 2014.07.27

-- 뉴욕중앙일보 2014년 7월 3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