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8. 출생의 비밀

서 량 2014. 5. 19. 09:58

 5월은 가정의 달. 당신이 '가정'이라 알고 있는 'family'가 15세기경에는 한 가구에 속해있는 '하인들(servants)'을 뜻하는 집합명사였단다. 얼른 들으면 상식에 어긋나는 사설이지만, 내 말을 믿어다오, 이건 문헌상에 버젓이 검증된 사실이다. 

 

 'family'가 같은 조상에서 출생한 부모형제를 뜻하는 현대적 의미로 자리를 잡은 것은 17세기쯤이었다. 지금은 가정에 충실한 남자를 일컫는 'family man'도 19세기 초에는 도둑이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양키들의 가정에 대한 인식은 이상하다. 근력 좋은 하인이거나 식솔을 위해 도둑질을 일삼던 서구의 가장(家長)들은 도무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next of kin'은 가까운 가족이라는 뜻. 'kin (친족)'은 고대영어 'cynn'에서 유래했다. 'kin'에 'd'를 합친 'kind (종류, 친절한)'와 'g'를 더한 'king (왕)'도 같은 말뿌리다. 같은 부류 사람들끼리는 서로간 친절한 법이고 왕도 두말할 나위 없이 동족 출신이라야 하거늘 왕을 자동차처럼 외국에서 수입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프로이트가 1909년에 발표한 'Family Romances (가족 로맨스)'라는 개념이 있다. 그는 아동 정서 발육과정 중 어느 시기에 잠시 어머니 아버지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공상에 빠지는 경험을 확대 해석했다. 가장 완벽한 보호자였던 부모가 한갓 보통사람으로 보일 때쯤 우리는 자신이 고귀한 집안의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엉뚱한 생각을 함으로써 평범한 부모에 대한 환멸감을 극복하려 한다. 같이 사는 부모가 생부생모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품는 애정이 근친상간의 금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매달린다. 일부 정신분석가들은 기독교에서 예수를 소시민적인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기보다 신의 아들로 신분상승을 시키는 정신상태를 일종의 가족 로맨스로 해석한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무지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운을 겪는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조카스타가 목을 매어 자살하자 그녀의 브로치로 스스로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가족 로맨스에서 출발한 아동심리는 급기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도달하여 전 인류의 문화와 예술을 잡고 흔드는 현세의 시대풍조를 낳는다.

 

 

 

 

 

 당신이 즐겨 보는 한국드라마의 남녀들도 출생의 비밀을 구체화시키는 극적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어릴 적형제자매 중 누구는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고 놀려대던 기억이 새롭고 부모 한쪽의 불륜으로 인하여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신의 출생에 대한 환상 때문에 몸을 떨던 당신이 아니던가.

 

 

 

 

 

 자연을 'Mother Nature'라 부르는 것도 아주 일리가 있다. 무엇이건 출산하는 능력을 어머니에 비유하는 발상으로 '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며, 'Failure is the mother of success.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도 있다.

 

 

 

 

 

 여권신장의 대모인 할머니가 등장하는 속담으로 'Don't try to teach your grandmother to suck eggs. (공자 앞에서 문자 쓰지 말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직역하면 인생 경험이 숱하게 많은 할머니에게 달걀을 빨아먹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뜻.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 관용어에 대하여 어느 양키 왈, "Don't try to teach your father to make love.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려 들지 말아라)"라는 말이 훨씬 호소력이 있다 해서 한참을 킥킥대며 웃은 적이 있다.

 

 

 

 

 

© 서 량 2014.05.18

-- 뉴욕중앙일보 2014 5 21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