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를 향해 운항 중이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 배에는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00 여명이 탑승하고 있었다는 소식이다.
인터넷 지구촌 곳곳에 뉴스가 뜨면서 세월호의 실종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한 'race against time(시간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거듭된다. 이 처절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22일 현재 110 여명의 주검을 수습했다는 속수무책의 사연을 듣는다.
외국 신문들은 세월호를 'Sewol ferry'라 표기한다. 세월을 'time'이라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억지 상상을 했다. 뉴욕타임즈도, 주간잡지 '타임'도, 그리고 영국의 '더 타임즈'도 세월호를 'Time'이라 부르지 않았다. 바다 밑에 옆으로 누워 웅크리고 있는 세월아, 세월아!
13세기부터 전해오는 영국 격언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이 문득 떠오른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쓰라린 금언, 'Lost time is never found again.(잃어버린 시간은 절대로 다시 찾지 못한다.)도 생각난다.
'시간(時間)'은 한자이고 '때'는 우리 고유의 말로 알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고려대 명예교수 어원학자 김민수는 '때'가 한자어의 '대신할 대(代)'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한 시대(時代)는 당대의 시간을 대신하는 말이다. 영어로는 시간도 시대도 둘 다 'time'이라 한다.
TV는 바다를 바라보며 울먹이는 부모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제공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초췌한 모습으로 아들을 기다리는 어느 여자가 먹어야 산다고 말한다.
'때'의 뜻을 사전은 셋으로 나눈다. 첫째가 시간이고 둘째는 기회라는 의미, 그리고 셋째로 '때를 거르지 말아라' 하는 말처럼 식사, 즉 끼니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영어 'time'과 우리말 '때'의 차이점이며 우리 고유의 구강성(口腔性)이 고개를 쳐드는 부분이다.
누군가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기질을 말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를 분석하는 중 우리의 성미 급함으로 인하여 세월호의 안전관리와 비상대응훈련을 대충대충 했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나온다. '빨리빨리'는 'fast and furious'로 번역하지만 'in no time'도 있고 그보다 한술 더 뜬 'in less than no time'은 더 극적이다.
'in no time'을 한자어로 직역하면 나훈아가 1989년에 부른 히트곡처럼 '무시(無時)로'이다. 비슷한 '불시(不時)에'도 있다. 세월호의 침몰은 불시에 일어난 참사다. 아픔을 되삭이며 바닷가에 서 있는 부모들에게 나훈아는 흐느끼듯 노래한다.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TV를 켤 때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time after time) 검푸른 파도 출렁이는 진도 앞바다가 화면을 적신다. 슬픔이 해일처럼 밀어닥칠 때 옛날 노래라도 크게 틀면 마음이 풀리려나 몰라.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1984)을 당장 듣고 싶다.
If you're lost you can look / and you will find me / Time after time / If you fall I will catch you / I'll be waiting / Time after time (당신이 길을 잃었다면 /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에요 / 몇 번이고 몇 번이고 / 당신이 넘어지면 내가 붙잡아드릴 거에요 / 기다리고 있을게요 / 몇 번이고 몇 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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