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4. 끔찍한 것들

서 량 2014. 3. 23. 21:31

 좋다는 뜻으로 미국에서 197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한참 기승을 부리던 간투사 'Terrific!'이 십여 년 전부터 'Awesome!'에게 점점 밀리고 있다. 그냥 'Good!'이라 말해도 괜찮을 때 요새 양키들은 하나같이 '어썸!' 한다. 한국 인터넷에도 '어썸 노트' '어썸 호스텔' '어썸 버거'까지 뜨면서 하여튼 간에 '어썸'이 판을 친다. 그러나 '테리픽''미스터 테리픽'이라는 만화 주인공을 다루는 사이트가 고작이다.

 

 'terrific'17세기 라틴어 'terrificus'에 뿌리를 둔 말로서 무섭다는 뜻이었는데 19세기 말에 아주 멋지거나 훌륭하다는 의미로 변했다. 같은 어원에서 'terrible (지독한, 끔찍한)'이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끔찍한 것이 훌륭하다는 말인가. 양키들은 왜 이다지도 부정적인 정서를 추구하는가.

 

 우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가수 박현빈은 '샤방샤방'에서 "얼굴은 브이 라인, 몸매는 에스 라인, 아주 그냥 죽여줘요~" 하며 목청을 떤다. 여자가 섹시한 얼굴 윤곽과 몸매로 남자를 죽이다니! 허기사 보고 싶어 죽겠다거나 먹고 싶어 죽겠다는 표현도 이 말과 짐짓 대동소이한 마음이거늘. 영어에서도 여자가 지독한 미인일 경우에 슬랭으로, 에헴, 'drop-dead gorgeous (고꾸라져 죽을 정도로 아름답다)'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영국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들이 즐겨 쓰는 속어 'smashing (산산이 부서지는)'도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 당신도 진정 죽거나 부서지는 것이 아름다움의 극치라는 생각인지.


 'awesome'은 13세기에 고대 노르웨이 말 'agi (공포)'라는 단어의 형용사로서 영한사전에 '두려운, 엄청난, 기가 막히게 좋은'이라 나와 있다. 우리 속어에 기똥차다는 표현이 연상되는 말이다. '기똥차다'는 기가 항문까지 찬다는 의미라기보다 기통(氣通)이 꽉 찰 정도로 자극이 대단하다는 의미니까 그리 아시도록. , 인터넷 광고에 '기똥찬 버거'도 수두룩하게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같은 의미의 간투사로 오래 전부터 'Fantastic!' 'Fabulous!' 'Super!' 'Excellent!' 등등의 표현도 자주 쓰였고 50년 전쯤 옛날에 누구나 연발하던 격조 높은 'Wonderful!'이나 영국식 'Marvelous!'도 정겹기만 하다. 'fabulous' 'fable (우화, 꾸며낸 이야기)'의 형용사로 'fantastic'처럼 비현실성이 충만한 말이다. 이런 간투사들은 'superior (우수한)'의 준말 'super' 'excellent (뛰어난)' 같은 싱겁고 직설적인 묘사보다 훨씬 더 우리의 상상력을 풍요롭게 한다.

 

 근래의 우리 유행어 '얼굴짱' '몸매짱' ''을 인터넷으로 검토했다. 이때 ''은 사장, 회장 같은 최고 직책을 뜻하는 장()세게 발음한 것이란다. 'excellent' 만큼이나 그 묘사가 곧이곧대로다. 거기에 비해서 '끝내준다'는 표현은 어김없이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죽여준다'만큼 등골이 서늘해진다.

 

 끔찍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 중에 'terrible' 'terrific' 외에 'terror'도 있는데 이 세 단어가 다 전인도 유럽어의 'tres (떨다)'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너 나 할 것 없이 작금의 테러리즘을 향한 공포는 당신이 아직도 은밀히 기억하는 첫사랑의 환희처럼 우리의 교감신경을 자극시켜서 전신을 떨게 한다. 사람의 중추신경계는 자극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애오라지 그 강도가 격렬했을 때 끔찍하고, 죽을 것 같고, 기똥차고,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 서 량 2014.03.23

-- 뉴욕중앙일보 2014 3 2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