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2. 금 도둑질

서 량 2014. 2. 24. 12:49

 2014 2 20일에 소치 동계 올림픽 여자 피겨대회에서 김연아는 은메달을 받았다. 금메달은 스케이팅 도중 넘어지기까지 한 러시아 선수 아데리나 소트니코바가 차지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결과는 심판들이 텃세 위주의 편파적 점수를 매겼기 때문이었다는 의견으로 지구촌이 들썩였다.

 

 'medal'은 고대 불어 'metal (금속)'이 라틴어에 수입되어 16세기에 동전 또는 훈장이라는 뜻으로 변한 단어다. 금속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귀중한 물질이다.

 

 'mettle' 또한 기질, 성미, 용기라는 의미의 추상명사로서 'metal'에서 곧바로 파생된 된 말. 사람의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당신의 양키 친구가 'I am on my mettle' 하면 그가 튼튼한 기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다.

 

 2004년 한국 TV 일일 연속극 '금쪽같은 내 새끼'를 간혹 보던 기억이 난다. 영어 관용어에 'golden opportunity'라는 말이 있는데 절호의 기회라 번역하는 대신 '금쪽같은 기회'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생 무엇이 은쪽 같다는 비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

 

 'gold'는 전인도유럽어, 'yellow (노란색)'와 발음이 비슷한 'ghel-'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5,6천 년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값진 물품은 밝은 햇살의 노란 빛이었다. 그들의 소박한 가치관은 7,8천 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 스마트폰을 거머쥔 강도들이 훔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금괴로 낙착한다.

 

 'silver'는 은행 금고 속이 아닌 일상용어에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silver-tongued'는 언변이 좋다는 뜻이고 'silver bullet'은 문제를 해결하는 묘안이나 병을 고치는 특효약 같은 의미지만 'quicksilver'는 변덕이 심하다는 말이다. 귀금속 중에서 변함없는 금이 역시 최고다. 우리 동요 '도깨비 나라' 가사에도 '금나와라와라 뚝딱' '은나와라와라 뚝딱'보다 먼저 나온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라는 금언은 어떤가. '모든 구름에는 은빛 테두리가 있다'는 말은 안 좋은 일에 밝은 면이 숨어있다는 뜻이다. 내가 김연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bronze'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나 청동을 뜻하지만 구리(copper)가 주성분이므로 'bronze medal'은 동메달로 통한다. 며칠 전 한국에서 10원짜리 동전을 녹여 값진 구리파이프를 만들어 떼돈을 번 사람이 국가재산을 훼손한 죄로 경찰에게 체포됐다는 인터넷 기사가 있었다.

 

 경찰을 뜻하는 'cop'은 경찰 제복에 달린 구리 단추에서 유래된 슬랭이다. 금도 금이라 하고 쇠도 금이라 하는 우리는 노랗게 번쩍이는 단추를 다 금단추라 한다. 반면에 양키들은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번쩍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라며 눈을 부라린다.

 

 'cop out'는 어떤 상황에서 빠져나간다는 뜻.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빙판에서 양팔을 우아하게 벌리고 슬근슬근 뒷걸음질 치는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 우습다. 내가 김연아에게 너무 정신이 팔려서일까.

 

 어느 러시아 고위층 심판 관계자 왈, 이번 경기 채점 결과가 편파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한 사연이 'USA Today'에 실렸고 연이어 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는 심판들이 내린 판정이 공정했다고 우긴다. 나는 'cop'의 훔친다는 뜻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She copped the gold from Yuna Kim. Putin was behind her'. (그녀가 김연아에게서 금메달을 훔쳤다. 푸틴 빽으로다가.)    

 

© 서 량 2014.02.22

-- 뉴욕중앙일보 2014 2 2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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