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1. 카더라 하더라

서 량 2014. 2. 10. 05:31

 1466년 훈민정음 창시 당시 원본에 쌍히읗, ''이 있었는데 영어의 'h'같이 부드러운 발음 ''이 아니라 'k' 또는 'ㅋ'처럼 거센 소리라서 '된소리'라 불렸다.

 

 유태인들이 갓난 아들 생식기 끝을 좀 잘라내는 엄숙한 예식을 할례(割禮)라 한다. 벤다는 뜻의 할() ''이 변한 말이다. 불을 켜면 주위가 갑자기 환해지는 의미의 '불현듯' '불켠듯'의 키읔이 히읗으로 변한 말. 그리고 당신과 나는 인터넷에서 종종 'ㅋㅋ', 'ㅎㅎ' 하며 텍스트로 웃는다. ''''은 거의 같은 소리다.

 

 ''''으로 탈바꿈도 한다. 힘을 심이라 하고 형님을 성님이라 하고 '헤아리다' '세다'가 같은 뜻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굳이 전라도 사투리를 몰라도 '쌔 빠지게' 일한다는 말을 들으면 한 사람이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혀()를 빼물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영어에서 'h'가 묵음(默音)이 되는 경우를 본다. 'hour (시간)' 'honest (정직한)', 혹은 'honor (영광)' 같은 단어에서 'h'는 발음되지 않는다. 당신이 새삼 놀랄 것도 없이 불어의 모든 'h'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hospital'이나 'hamburger'를 프랑스 사람들은 '오삐딸'이나 '암버거'라 한다. 한 번은 불란서 태생 친구를 ", 너희들은 웃을 때도 하하, 하지 않고 아아, 하고 웃냐?" 하면서 놀린 적도 있다.

 

 근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카더라 통신'이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한다. '카더라'는 표준말 '하더라'의 경상도 사투리. '카더라 통신'은 객관적인 증거도 없이 떠도는 소문만 듣고 인터넷에서 남을 비방하는 누리꾼의 이상한 짓거리를 연합 통신이나 로이터 통신에 빗대어 생긴 신조어다. 이때도 ''''과 자리바꿈을 한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이야기로 200년에 걸쳐 인류의 동심을 사로잡은 그림 형제(Brothers Grimm)를 아시겠지. 유럽 각지의 민간설화를 수집해서 첫 동화집을 1812년에 출판한 두 형제 중 특히 형 'Jacob Grimm'(1785-1863)은 소문난 언어학자였다. 그는 1820년대 초기에 'Grimm's Law'를 발표해서 언어역사학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그림의 법칙'은 영어의 모체(母體)인 전인도유럽어(Proto-Indo-European)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음 발음의 변천 과정을 총망라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 법칙은 자음 중에서 무성(無聲)의 폐쇄음(unvoiced stop)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마찰음, 치설음, 또는 후두음 같은 유성자음(voiced consonant)으로 변하는 장면을 환하게 조명한다. 그는 'p' 't' 'k' 'f' 'th' 'h'로 바뀌는 현상을 예의주시했다. 스페인 말 'padre (아버지)'가 영어의 'father'가 되고, 희랍어 'trios ()' 'three', 그리고 라틴어 'cornu ()' 'horn'으로 변한 것 등등을 열심히 지적했다.

 

 '하하, 흐흐'는 세련된 의사소통이 아닌 직접적 감정표현이다. 게다가 히읗을 이응으로 바꿔서 '아아, 으으' 한다면 바야흐로 완전 감탄과 신음의 경지다.     

 

 이제 자신 있게 말하노라. 우리말도 '그림의 법칙'대로 '카더라''k' '하더라' 'h'로 변했다는 것을. 경상도 사람들이 우리말을 아직 옛날 발음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불어의 'h'처럼 우리말의 '' 소리 또한 다 사라진 먼 훗날 당신과 나의 까마득한 후손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알아버지', '알머니'라 부르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크크, 흐흐, 으으, 하며 나는 웃으면서.

 

 

© 서 량 2014.02.08

-- 뉴욕중앙일보 2014 2 1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