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00. 고삐 풀린 망아지

서 량 2014. 1. 27. 08:07

 2014 1 7, 은퇴한 흑인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Dennis Roadman)CNN TV 인터뷰에서 북한에 억류 당한 한국계 미국시민 케니스 배(Kenneth Bae)에 대한 질문을 받고 횡설수설했다. 그는 "I don't give a rat's ass what the hell you think!", "네가 젠장 어떻게 생각하는지 쥐똥만큼도 개의치 않아!" 하며 소리친다.

 

로드맨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김정은의 생일축하로 친선 농구게임 겸 평양을 방문하는 참이었다. 그는 미국에 돌아오자 마자 바로 1 15일에 알코올 재활원(Alcohol Rehab)에 입원한다.

 

 'rat's ass'1967년에 정식으로 미국영어에 등록된 말. 1884년에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쓴 소설 '헉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에 나온 'I don't give a dead rat'이라는 부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죽은 쥐만큼도 개의치 않다니! 하여튼 양키들은 'I don't give a ~'라는 관용어가 늘 입에 붙어있다. 이때 깍듯이 정관사 'a'가 꼭 들어간다.

 

 개의치 않는다는 뜻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에서 렛 버틀러(Rhett Butler)가 스카렛 오하라(Scarlett O'Hara)에게 한 대사가 떠오른다.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 ("솔직히 여봐요, 제기랄 내가 알 바 아니야.") 이 말은 2006년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영화대사로 뽑힌 적이 있다.

 

 우리 일상어에도 동물이 등장한다. 싱거운 사람을 놀릴 때 '싱겁기가 황새 똥구멍 같다'는 말이 우습고 슬피 우는 사람을 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 표현일랑 짐짓 잡스럽다. 돼지꿈을 꾸면 대박을 기대하고 임산부에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라는 덕담도 한다.  

    

 1915년부터 양키들이 즐겨 쓰는 슬랭 'bullshit (소똥)'은 미국에 살면 매일 몇 번씩 듣는 속어로서 별로 쌍말도 아니다. 사전은 헛소리, 허튼 소리, 혹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풀이한다.

 

 'bull'에는 황소라는 뜻 외에 고대 불어와 중세 영어로 거짓말 또는 사기라는 의미가 있었다. 악취가 코 난간을 무너뜨리지만 약자로 점잖게 'b. s.'라 하는 'bullshit'은 우리 말의 '개소리'보다 훨씬 부드러운 뉘앙스를 풍긴다.

 

 'a bull in a china shop'이라는 관용어는 또 어떤가. 도자기 집의 황소? 성난 소 한 마리가 도자기 진열장을 뿔로 받으며 우당퉁탕 좌충우돌하는 장면을 그려 보라. 우리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라 하면 딱이다. 자고로 인간과 가까운 동물 중 가장 큰 골치거리는 서양의 황소와 동양의 망아지가 아니던가.

 

 테네시 윌리엄즈(Tennessee Williams)의 희곡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Cat on a Hot Tin Roof'를 생각했다. 이 제목은 안절부절 못한다는 뜻의 관용어에서 그대로 따온 말이다. 자신이 고양이라는 상상을 한 번 해 보라. 이건 얼마나 발바닥 뜨겁고 황망한 상황인가. 그날 로드맨이 꼭 그 꼴이었다.

 

 북한과 농구 외교를 한답시고 껍적대는 주정뱅이 로드맨은 급기야 20141 9일에 CNN과 케네스 배 가족에게 공개석상에서 깊이 사과한다. 전 세계의 눈총을 받고 있는 북한 독재정권의 'top dog' (꼭대기 개), 우두머리 김정은의 친구랍시고 우쭐대는 그는 지가 이틀 전 술에 만취해 터무니없는 발언을 했노라고 왈왈대면서 숨차게 언성을 높였던 것이다.

 

© 서 량 2014.01.26

-- 뉴욕중앙일보 2013 2 2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