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과 언쟁을 한 뒤끝에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며 소리치고 돌아선다면 그 말은 축복이 아닌 저주임이 틀림없다. 그렇듯 '먹는다'는 말에는 잡스러운 뉘앙스가 숨어 있다. 삶에 있어서 사랑이나 우정 또는 취미생활 같은 세련된 주제를 마다하고 먹는 것을 들입다 강조하는 순간 사람은 동물 차원으로 타락한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을 요즘 우스개 소리로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한다. 아무리 학식이 없는 개라도 글과 학문에 자꾸 반복해서 노출되면 시구(詩句)를 익힐 수 있다는 고매한 교훈이 어찌하여 개가 얼큰한 라면을 끓이는 장면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언도 한참 생각해 볼 일이다. 얼마나 먹는데 정신이 팔렸기에 한 사람의 목숨보다 맛있는 음식이 더 소중하다는 과장법이 통하는가.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에서 무엇이든 공짜로 먹을 기회가 있으면 죽음도 불사한다는 심리는 또 무언가.
서구적인 음식은 허기를 충족시키는 우리들의 마음가짐과 아주 거리가 멀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에서 '국'은 분명 떡과 연관되어 군침이 절로 넘어가는 음식이지만 'He is in the soup'는 한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는 뜻이다.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지만 그래도 의사임이 분명한 나는 입때껏 사람이 수프에 빠져서 고생했다는 케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또는 '먹자는 귀신은 먹여야 한다'는 속담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관절 얼마나 먹는 데 한이 맺혔으면 산 사람만으로 부족해서 귀신까지 들먹이면서 우리는 먹는 이야기를 꺼내는가.
'없는 놈이 찬밥 더운 밥을 가리랴'는 속담도 먹는 비유다. 반면에 'Beggars can't be choosers. (구걸하는 사람은 선택권이 없다.)'에는 음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벼락에 콩 구워 먹는다'는 표현도 우리를 움찔하게 한다. 똑같이 콩이 들어가는 말이지만 'He spilt the beans. (그는 콩을 쏟았다?)' 하면 먹는 것과 전혀 무관한 뜻으로 그가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결국 양키들도 우리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음식에 대한 관심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말의 '몽땅 다'를 지칭하는 관용어로 'from soup to nuts'가 그런 경우이고 거물급 인사를 'big cheese (커다란 치즈)'라 하고 난처한 사안을 'hot potato (뜨거운 감자)'라 하는 예도 그렇다. 'Hunger is the best sauce. (시장이 반찬이다.)'는 우리와 거의 똑 같은 발상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냐는 뜻으로 친한 사이에 하는 인사말, 'What's cooking?' 또한 음식을 주제로 한 발언이다.
정신분석에서 사람의 심리상태나 성향 중 배고픔과 허전함이 일으키는 욕구와 행동을 구강성(口腔性)이라 부른다. 그리고 대변(大便)을 볼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폭발적인 현상(?)을 항문성(肛門性)이 표출하는 공격심리로 풀이한다.
'나 못 먹는 밥에 재 뿌린다'는 마음은 또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왜 때때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는 심보 고약한 말을 듣는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나는 'as cool as cucumber', 오이처럼 냉정하게(?)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다. 즉, 우리의 공격심리는 사나운 항문성에서만 유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이빨에서도 기인했다는 점이다. 이빨은 파괴적이다. 아득한 동화 속에서 오누이를 가마솥에 삶아 잡아먹으려던 늑대의 그 번득이는 송곳니처럼.
© 서 량 2013.12.2
-- 뉴욕중앙일보 2013년 12월 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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