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94. No Problem!

서 량 2013. 11. 3. 10:51

'thank (감사하다)'라는 단어는 영어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전인도 유럽어의 '*tong-'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feel (느끼다)', 혹은 'think (생각하다)'라는 뜻이었다가 14세기에 '고마워하다'라는 의미로 변했다. 'thank' 'think'는 거의 같은 말이었다.

 

고대 유럽인들은 서로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었다. 그들은 'Thank you!' 'I thank you!'라 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간 현대의 어느 청명한 가을 아침에 스산한 슈퍼마켓에서 당신에게 사소한 친절을 베푼 여자를 향하여 고대영어로 'I think you (당신을 생각합니다)'라고 이상하게 말한다면 당신은 그녀에게 수작을 거는 사람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10수년 전부터 'No problem!'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Thank you'에 대한 말대답으로 미 전역에 산불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다. 'You're welcome!'이나 'My pleasure!', 'Anytime!' 혹은 'Sure!'같은 고전적 화답에 비하면 참으로 퉁명스러운 화법이다.

 

'problem'은 라틴어와 희랍어와 고대불어에서 'task(직무)''question (질문)'이라는 뜻이었고 'difficulty (어려움)'라는 나쁜 의미는 15세기에 생겨났다 한다. 'no' 'problem'도 둘 다 부정적 뜻이기 때문에 'No problem'은 이중부정에 해당된다. 우리말로 '문제 없어!' 또는 '괜찮아!'라 옮기면 그럴듯하다. '공연(空然)하지 아니하다'에서 유래한 '괜찮다'도 이중부정이다. 영어건 우리말이건 이중부정은 늘 그윽한 정취를 풍긴다. 'Good!'이라는 저렴한 칭찬 대신 'Not bad!' 하면 어딘지 느낌이 은근하지 않은가.

 

상대가 한 말을 깡그리 부정하는 어법도 있다. 영국영어는 'Thank you!' 'Not at all!' 하며 재빨리 받아 치는 품위를 과시한다. 'It's nothing!'이라는 대응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으로 불어의 'De rien!', 스페인어의 'De nada!'가 있는데 둘 다 똑같이 'Of nothing (없는 것)'이라는 전면부정이다.

 

우리말의 '아니에요!' '천만에요!'도 자기를 비하시키면서 상대의 발언을 짐짓 묵살하는 태도다. 정성껏 고마워하는 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말투다.

 

괜찮다는 의미로 북한 사람들이 잘 쓰는 '일 없어요'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얼핏 듣기에 자신이 백수건달이라는 말 같지만 상대를 도와준 일이 큰 일이 아니라는 겸손한 발언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그들은 평소에 얼마나 일하기가 역겨웠으면 'My pleasure!', '제 낙()입니다'에 해당되는 기쁜 마음을 휴무(休務) 상태에 빗대는가.

 

'천만에요!'도 좋지만 '뭘요...' 하며 말끝을 흐리는 반응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순 꿍꿍이 수법이다. 그 보다는 'You're welcome!'이나 'Anytime!'같은 명쾌한 응수가 훨씬 더 긍정적일 텐데.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요사이 양키들은 거의 아무도 'You're welcome!' 하며 활짝 웃으며 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많은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의 삐딱한 시선으로 감사하는 사람에게 'No problem!'이라 외친다. 고마워하는 상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자기의 언행이 전혀 골치 아픈 문젯거리가 아니었으니 마음을 푹 놓으라는 사연일 뿐... 기쁨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주는 심리적 위로에 매달리는 당신과 나의 시대정신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 'No problem!'이라고?

 

 

© 서 량 2013.11.2

-- 뉴욕중앙일보 2013 11 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