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나 '먹자골목'을 영어로 직역하면 말이 안 된다. 'tasty house'나 'Let's eat alley'라는 신조어는 어떨까 하다가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신분석학 차원에서 보면 우리 단군의 후손들은 아무래도 구강형(口腔型)이 지배적이라는 느낌이다.
구강형 성격의 특징은 'attention seeking behavior (남의 주목을 끄는 행동)'에 있다. 이들은 모험이나 예술활동을 통하여 자신과 남들의 허전한 정서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세인의 눈길을 끌기 위하여 악행도 사양치 않고 극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틱한 행동은 호소력의 원천이다.
극(劇)은 극(極)을 요구한다. 극한상황의 묘미는 스릴과 박력이 철철 넘치는 각본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빨리빨리'라는 한국말이 맨해튼 한인타운 근처 주차장에서 양키들간에 유행하는 것도 우리의 다급한 의식구조가 반영된 극적인 표현이다.
우리말 속언의 음식은 '그림의 떡'이나 '이게 웬 떡이냐' 할 때처럼 대부분 떡이다. '다 먹고 말고기라더니' 같은 말도 있지만 고기를 주제로 한 표현은 드문 편이다.
영어에는 고기가 우리말의 떡처럼 자주 거론된다. 이를테면 'meat and potatoes'는 기본사항이라는 뜻이고 'meat and potato guy (고기와 감자 사내?)'는 건실하지만 별 볼일 없이 평범한 남자를 지칭한다.
'생활비를 번다'는 의미로 쓰이는 'bring home the bacon'이라는 말에도 돼지고기를 훈제한 '베이컨'이 점잖게 등장한다. 이 말은 우리말의 '밥벌이 하다'에 해당되는 속어다. 양키들은 기본적으로 수렵시대의 습성대로 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우리는 농경사회의 유물인 곡기를 추구하는 셈이다.
우리가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식으로 동물 이름에 고기라는 단어를 그냥 붙여 쓰는 반면 영어에서는 'beef', 'pork', 'mutton'처럼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서구의 육류가 우리의 고기보다 훨씬 세분화 됐다는 증거다. 같은 양고기라도 'mutton'은 성숙한 양의 고기이고 'lamb'은 어린 양의 살코기다. 'lamb'은 영계처럼 연하고 야들야들한 양고기다.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생긴 말에 'mutton dressed as lamb'이 있다. 직역하면 질겨서 씹기 힘든 어른 양고기에 어린 양의 옷('lamb'에 바르는 드레싱)을 입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건 알고 보면 양고기 얘기가 아니라 나이든 여자가 젊은 여자처럼 꼴사납게 차려 입었다는 비아냥이다. 생물학적으로, 에헴, 임신과 출산을 위한 젊음을 뒤늦게라도 심리적으로 추구하는 여성이 듣기에 엄청 굴욕적인 발언이다. 뭐? 여자가 양고기라고?
우리말에도 음식을 소재로 사람의 야비한 속성을 지적하는 속언이 꽤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나'는 한 인간의 후각과 미각의 식별 능력을 노골적으로 능멸하는 말이다.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나 '가을 아욱국은 계집 내쫓고 먹는다'도 어처구니 없이 이기적인 우리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당신과 나의 구강성(口腔性)은 항문성(肛門性)만큼이나 고깝고 치사하다.
'밥은 굶어도 속이 편해야 산다'라는 속담으로 끝을 맺어야겠다. 떡과 밥을 들먹이는 속담 중 유일하게 구강의 위세를 압도하는 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통속성에 도전하는 이 서늘한 지혜에 나도 정신과 의사답게 소신껏 매달려야겠다. 마음의 평온이 누워서 먹는 떡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뉴욕 근처에 있는 어느 한국병원의 이름이 '속 편한 내과'라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느낌이다.
© 서 량 2013.11.17
-- 뉴욕중앙일보 2013년 11월 2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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