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92. 'Good'이 좋다고?

서 량 2013. 10. 7. 11:24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라는 격언이 있다. 직역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가 된다. '빚주고 뺨 맞는다'는 우리 속담이 떠오른다. 좋은 의도에서 남에게 돈을 꾸어 줬다가 나중에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니까 얼토당토않게 뺨을 맞는 지옥 같은 상황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이 말은 또한 곱상한 마음으로 사람이 무엇을 시작했다고 꼭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남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서 곤경에 빠지는 경우처럼 들린다. 이럴 때 'good intentions (좋은 의도)'는 매우 안 좋은 상황을 예고한다.

 

'No good deed goes unpunished', 하는 속언도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행(善行)은 꼭 벌을 받는다'? 비슷한 뜻으로 우리말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가 있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듯 좋은 행동은 역경의 씨앗이다. 'x 주고 뺨 맞는다'는 비속어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 쓰인다.

 

이 말은 또 직장에서 어떤 힘든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완수했더니 당신의 상사가 다시 어려운 일을 떠 맡겼을 때 당신이 내 뱉는 말일 수도 있다. 애초에 그토록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다른 하나의 새로운 중책을 울며 겨자 먹듯 떠 맡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완벽주의는 이렇게 고난을 자초한다.

 

'The good is the enemy of the best. (잘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의 적이다)' 라는 금언도 있다. 일을 어중간하게 잘하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는 완벽주의자를 도저히 쫓아가지 못한다. 이때도 'good'은 썩 기분 좋은 단어가 아니다. 'excellent'가 금메달이라면 'good'은 은메달에 해당되는 셈이거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Gresham)의 법칙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영어로 'Bad money drives out good'이라 한다. ()이 악()에게 여지 없이 밀린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를 지배하는 우주의 규범이 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진리는 어디로 갔는가.

 

'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모든 좋은 것은 기필코 끝이 있다.)' 하는 속담도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불교에서 주창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보다 훨씬 더 심금을 찌르는 표현이다. 달콤한 동화의 마지막 문장,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를 무색하게 하는 이 말은 어른들만의 뼈아픈 금과옥조다.

 

이쯤 해서 나는 'good'의 어두운 의미에서 탈출해야겠다. 마음을 굳게 먹고 'good'이 노래하는 삶의 찬미에 합세하고 싶다.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마땅히 그 보답을 받는다는 뜻으로 'one good turn deserves another'라는 흐뭇한 격언에 대하여 생각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No news is good news'도 마음에 든다. 'Good things come to him who waits. (기다리는 자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라는 영어 격언을 '좋은 소식은 기어가고 나쁜 소식은 날아간다' 하는 우리 속담의 방패로 삼고자 한다.

 

이렇듯 정취 그윽한 옛날식 사고방식의 따스함을 나는 좋아한다. 이럴 때 'There's many a good tune played on an old fiddle'이라 한다. 오래된 깡깡이에서 좋은 노래가 아주 많이 나왔다는 뜻이다.

 

© 서 량 2013.10.06

-- 뉴욕중앙일보 2013 10 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