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91. 과격한 언사

서 량 2013. 9. 23. 12:48

 미국에 오래 살면서 시시때때 근래의 우리말 유행어를 생소한 눈으로 살펴본다.

 

 '대박' 금은보화를 듬뿍 실은 '큰 배(大舶)'를 뜻하거나 노름꾼 용어이거나 또는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 준 흥부가 횡재를 한 커다란 박에서 유래했다는 둥 의견이 분분한 단어다요행수를 찾아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꿈대박!

 

 '굴욕'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난처한 입장이나 자존심을 구기는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굳이 어려운 한자어로 낯뜨겁게 해주는 유행어다옷을 세련되게 입지 못한 연예인을 두고 '굴욕 패션'이라 할 때처럼.

 

 '빵 터지다'?. 앞뒤 문맥으로 보아 ''은 의성어임이 분명하다무엇이 우스워서 웃음이 터진다는 뜻이지만 그 뉘앙스가 얼른 와 닿지 않는다고속도로 주행 중에 타이어가 펑크 나는 곤혹스러운 장면이 연상된다.

 

 대박을 영어로는 'jackpot'이라 한다사전에 떼돈노다지 등으로 나와있는 'jackpot'은 포커에서 유래한 말이란다. 대박이란 역시 큰 판돈이 왔다 갔다 하는 노름판이나 동전이 요란하게 쏟아지는 슬롯머신에서 오는 것이 제격이다.

 

 굴욕을 'humiliation'이라 옮겨 놓았더니 모욕적인 의미가 절감되는 느낌이다왜냐면 'humiliation' '겸손하다(humble)'라는 두 단어의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당신은 굴욕을 주는 사람과 굴욕을 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서로 어긋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가하찮은 상황을 잔뜩 부풀려서 심한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놀부기질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빵 터진다는 말 대신에 크게 웃는다는 뜻의 인터넷 슬랭으로 'LOL (Laughing Out Loud)'가 있다양키들은 우리의 짭짤한 비유법보다 이렇게 싱거운 진술에 그치는 수가 많다영어에는 우리말처럼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이 흔하지 않다.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우리는 한국에서 맨날 '전면대결'을 하고 '결사반대'하고 '전격 사퇴'를 하고 '초긴장'을 하는 것 같다주야장천 격렬한 어법과 강한 말투에 탐닉하는 우리들!

 

 강하다는 뜻의 'strong' 'strict (엄격하다)'와 말의 뿌리가 같다둘 다 전인도 유럽어 'sta-'에서 유래했으며 본래의 뜻이 'stand (서다)'였다권투나 무술에서처럼 우뚝 선 사람이 승리자이고 맥없이 누워있는 모습은 패배자의 자세다우리는 누구도 마음 든든한 강자(强者)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에 매달린다.

 

 'strong'뿐만 아니라 'st-'로 시작하는 단어들 중에 강하고튼튼하고단단하고 힘이 넘치는 말이 많다. 'stone ()', 'steel ()', 'stamina (정력)', 'stable (견실한)', 'straight (곧은)', 'steady (확고한)', 'stimulate (자극하다)',  'study (공부하다)', 'start (시작하다)', 'stop (멈추다)', 등등이 그 예인데 하나같이 뜻이 싱겁기는 고드름장아찌라!

 

 생겨 난지 2,3년 밖에 안 되는 우리말에 '돌직구'라는 속어가 있는데 원래 야구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돌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이른바 직구(直球)를 뜻했다그러나 이제 돌직구는 방송계의 유행어가 돼버렸으며 상대의 기분을 묵살하고 자기 말만 직설적으로 날리는 무례한 발언이라는 뜻으로 변했다. 어떤가. 막말과 독설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가학(加虐풍조가 창궐하는 우리 작금의 세태가.

 

 은근함의 향취를 미덕으로 내세우는 동방예의지국의 방송가 지성인들이 과격한 언사를 쓰면서 오늘도 산지사방에서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무섭게 빠른 속도로 심리적 돌팔매질을 하는 재미가 꽤 쏠쏠한 모양이다.

 


© 서 량 2013.09.22

-- 뉴욕중앙일보 2013 9 2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