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rt (셔츠)'와 'skirt (치마)'와 'short (짧다)'가 같은 말 뿌리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곰곰이 살펴보니 's'로 시작하여 't'로 끝나면서 중간에 느글느글한 'r' 소리가 들어가는 이 세 단어의 발음이 너무나 비슷하다. 내 말이 맞나 틀리나 어디 당신도 한 번 큰 소리로 발음해 보라. "셔~r트!" "스커~r트!" "쇼~r트!"
극성맞던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이 선득 다가왔다. 민소매는 이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매해 이렇게 계절의 기온 차이에 따라 팔과 다리를 덮는 옷감의 길이를 달리한다.
'shirt'는 워낙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절의 길고 풍성한 옷을 뜻했다. '셔츠'는 옛날 옛적 고려적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눈이 바닷물처럼 파란 유럽인들이 몸을 감싸던 두루마리 같은 옷을 지칭한다. 그 당시 셔츠는 남녀공용의 '유니섹스 (unisex)'의 옷이었다.
옛날 유럽인들도 더운 피가 흐르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더러는 서로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다. 그들은 몸싸움을 할 때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졌다. 그래서 'keep one's shirt on'이라는 관용어는 참을성 있게 처신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당신의 친한 친구가 'Even if you go a little crazy, keep your shirt on' 라고 말하면 그건 '자네가 좀 미치고 환장하더라도 이성을 잃지 말게' 라는 말이다. 함부로 시계 풀고 웃통 벗고 덤벼들지 말라는 뜻이다.
'skirt'는 13세기 초에 독일 지방의 농민들 중에서 특히 여자들이 몸에 걸쳤던 긴 옷을 일컫는 말이었고 16세기 중엽에 여자라는 집합명사가 됐다. 그리고 1942년에 'skirt-chaser (치마를 쫓아다니는 사람?)' 같은 인칭대명사도 생겨났다. 우리도 '치마만 둘렀다 하면' 작업을 거는 남자들을 크게 존경하지 않는 사회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왜 그 반대에 해당되는 '바지만 입었다 하면' 하는 표현은 없을까.
'short'는 고대 영어로 'skirt'와 발음도 비슷하게 'scort'라 했다. 이 말은 전인도 유럽어의 'sker-'에서 유래했는데 잘라진 물건, 즉 '자투리'를 의미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스커트는 짧아야 한다는 만인의 음란한 요구가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짧다는 뜻이 함축된 스커트 앞에 작다는 뜻의 '미니'를 붙여서 미니스커트라는 단어가 생겨난 때가 히피족이라는 반체제(反體制) 운동이 미국에서 고개를 바짝 치켜든 1965년이었다.
'short-fused'는 참을성이 없고 성미가 급하다는 뜻인 반면 우리말의 '가방 끈이 짧다'는 교육을 잘 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short'에는 반문화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머리는 짧고 치마는 길게'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 한국에 만연하는 획일주의적 분위기에 대하여 투덜대는 말투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여고생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들의 유혹을 막을 요량으로 치마를 길게 입어야 한다고 교육자들이 압력을 넣는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과 다양성을 묵살하려는 우리의 군대식 사회풍조에 반기를 드는 글이었다.
비록 한국 여고생들이 '머리는 길게 치마는 짧게' 한다 해도 그토록 한이 맺힌 공부만 잘하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반항적인 생각을 하면서 엊그제 환자를 보기 직전에 '생각은 길게 말은 짧게'라고 한국말로 한번 뇌까려 보았다. 나이 먹을수록 말이 많아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슬로건이다.
© 서 량 2013.08.26
-- 뉴욕중앙일보 2013년 8월 2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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