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88. 먹고 잡기

서 량 2013. 8. 13. 12:05

  'catch'12세기에 생겨난 아주 수상한 단어로서 현대 불어의 'chasser (사냥하다)'와 말의 뿌리가 같다. 'chase (추적하다)'도 원래 사냥한다는 뜻이었고 16세기에 접어들어 'catch'는 잡는다는 말이 됐다.

 

 사냥을 할 때는 컹컹 짖어대는 사냥개를 앞세워 단백질이 풍부한 토끼나 사슴 같은 생명체를 추적해야 된다. 그리고 사냥의 클라이맥스는 포획한 동물을 점잖게 잡아먹는데 있다. 숲에서 성급하게 총질을 하는 서구인이나 멋진 벙거지 모자를 쓰고 낚시 동호회에 나가는 연세 지긋한 당신의 작은 아버지도 애써 잡은 동물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다.

 

 'catch up with someone'이라는 관용어는 누구를 따라잡는다는 뜻이고 더 구어적(口語的)으로는 '따라먹다' 혹은 '따라마신다'고 한다. 우리말의 잡고, 먹고, 마시는 행위는 늘 서로 붙어 따라다닌다.

 

 미국 금융계를 잡고 흔드는 은행 이름이 'Chase'인 것도 역설적이다. 거대한 기업체 체이스 은행이 소시민들의 돈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이미지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엊그제 우연히 한국의 한글 학자 강상원 박사가 주장하는 '먹고 잡다'의 어원에 대한 동영상을 유심히 보았다. 영어의 'I want to ~'를 매끄러운 표준어로 '~ 싶다'라 옮기겠지만 '~ 잡다'라며 구수한 토속어로 번역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경도, 충청도, 경상도,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에서 힌트를 얻은 그의 예리한 분석은 어린 시절을 경상도와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살았던 나로서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다.

 

 무엇을 '하고 잡다'는 표현은 무엇을 '하고 싶다'는 뜻이면서 종족보존 본능과 자기보호 본능이 중첩되는 좀 교묘한 말이다. 쉽게 말해서 '먹고 잡다'는 말에는 무엇을 잡아 먹고 싶다는 동물적인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야구에서 포수(捕手)를 뜻하는 'catcher (잡는 사람)'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일까. 공을 던지는 사람과 치는 사람에 비하여 공을 잡는 사람의 위력은 어떤가. 힘껏 때려 날아가는 공이 캐처의 손에 단박에 잡혀버린다면 그 실망감 또한 대단할 것이다. 

 

 잡혔다는 말에는 자기 행동의 종말을 예견하는 그윽하고 서글픈 심리가 숨어있다. 이를테면 이성간에 누가 누구에게 잡혔다는 말은 요컨대 쌍방의 연애행각에 종지부가 찍혔다는 사연이다.

 

 마찬가지 논법으로 누가 누구를 잡았다는 말은 누가 누구를 잡아먹었다는 기분 잡치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누구와 섹스를 했다는 말 대신에 누가 누구를 먹었다는 비속어적인 표현을 금방 알아듣는 우리들이 아니던가. (아니면 말고!)

 

 누가 누구를 심하게 때리거나 신랄한 언사로 공격을 할 때 '아이구, 사람 잡네!'하는 표현은 어떤가. 이 또한 사위가 오면 닭을 잡아 대접하듯이 잡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말버릇이다.

 

 'catch'와 어원이 같으면서 약간 뉘앙스가 다른 말로 포착한다는 의미의 'capture'가 있고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뜻의 'captivate'도 있다.

 

 생포하거나 정복한다는 거칠고 사나운 말이었던 'captivate'16세기 초에 매혹하다, 호리다, 이를테면 여자가 남자의 간장을 녹이고 넋을 빼앗는 아찔하고 황홀한 뜻으로 변했다.

 

 무엇에 너무 심하게 넋을 빼앗기거나 홀려있는 정신상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절대로 내가 지금 무슨 말 꼬투리를 잡거나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하여튼 간에 사람 마음이 포로생활에 시달린다는 것은 정신 위생상 크게 권장할 일이 아니니만큼, 에헴, 그게 골프건 증권이건 정치건 예술이건 지금이라도 당신은 어서어서 서둘러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잡다. 

     

 

© 서 량 2013.08.11

-- 뉴욕중앙일보 2013 8 1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