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81. 다반사(茶飯事)

서 량 2013. 5. 7. 11:08

 30년 전쯤에 하루는 직장 동료와 잡담을 나누다가 "You should wake up and smell the coffee."라는 말을 들었다. 대충 짐작은 갔지만 분명하게 무슨 뜻인지 외국인 티를 팍팍 내면서 물어보는 것이 싫어서 얼렁뚱땅 넘겨 버렸다.

 

 엊그제 인터넷에서 우연히 'wake up and smell the coffee'라는 표현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그때 생각이 났다. 영한 사전은 이 말을 '냉수 먹고 속 차려라'로 옮겨 놓았다. , 그 마음 좋은 양키 친구가 한 말이 그런 모욕적인 뜻이었던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나 커피 냄새를 맡으라는 말은 크게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말은 한참 자존심을 구기는 발언이다. 우리는 그렇게 남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말을 잘 한다. 인터넷 기사에서 한 사람의 허점이나 실수를 '굴욕'이라 하는 것도 매우 혹독한 말투다.

 

 'coffee'의 어원은 아랍어 'qahwa'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이 말은 원래 술(wine)이라는 뜻이었고 술을 금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그걸 자기들의 술이라 불렀다. 'qahwa'에는 힘 혹은 정열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은 대개 커피나 술을 마시면 공연히 정신적으로 힘이 생기는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커피가 두뇌활동을 자극하거나 술이 억제력을 마비시키는 메커니즘은 비슷한 결과를 산출한다. 

 

 () 얘기로 넘어간다. 다방(茶房)이라 할 때는 ''로 읽는다. 중국어로도 ''''의 두 가지 발음이 있는데 ''에서 영어의 'tea'와 독어의 'tee'가 생겼고 인도어, 러시아어, 몽고어로 'chai'라 하고 모두 다 발음이 어슷비슷하다. 한자의 생김새도 (艹)과 사람(人)과 나무(木)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not one's cup of tea'라는 관용어가 있다. 누가 'It's not my cup of tea'라 했다면 그건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뜻이다. 물론 무엇이 마음에 들었다면 'It is my cup of tea'라 한다. 차는 정녕 즐거움을 전제로 하는 음료다.

 

 'not for all the tea in China (중국에 있는 차를 다 준다 해도 ~않겠다)' 라는 슬랭도 있다. 20세기 초에 생겨난 이 말은 결코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고 인종차별이 심했던 호주에서 생긴 말이란다. 그 당시 중국에서 차를 대량 생산하는데 대한 시샘이 듬뿍 깃들어진 속어다. 표준영어로는 'not for love or money (사랑을 준다 해도 돈을 준다 해도 ~않겠다)라 한다. 곁말이지만, 모질고 독한 마음으로 치면 중국산 차나 사랑이나 돈을 들먹이는 서구적 발상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하는 정몽주의 으스스한 선언이 단연 금메달 감이다.

 

 다반사(茶飯事)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놀랐다. 입때껏 나는 '많을 다()'인줄로 짐작해 왔는데 고려시대 때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관용어가 있었다니!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정도로 어떤 일이 흔하고 예사롭다는 뜻.

 

 커피는 뇌를 긴장시키는 각성제지만 차는 심장과 혈관을 이완시켜 준다. 차에 함유된 항산화제가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며 정신을 맑게 해줘서 참선의 경지와 유사한 뇌파를 발생시킨다. 얼마 전 발표된 동물실험에서 홍차와 녹차가 바이러스를 수 분만에 죽이거나 독성을 제거한다는 리포트도 흥미롭다.

 

 당신은 어떤가. 요새처럼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는 일상이 다반사인 세태에 굳이 커피를 마셔서 맹탕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 정서를 안정시키고 늙음을 견제하고 살균 효과가 있는 차가 은근히 당기지 않는가.

 

© 서 량 2013. 05.06

-- 뉴욕중앙일보 2013 5 8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