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82. 치고 때리기

서 량 2013. 5. 21. 12:00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려는데 양키 친구가 선수를 치니까 아차, 내가 한발 늦었구나 싶었을 때 'You beat me to it! (선수 쳤네!)'라고 당신은 능숙하게 말할지어다.

 

'beat'는 상대를 이긴다는 뜻이지만 이 짧은 관용어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기사 '선수(先手)를 치다'도 좀 이상하게 들리는 건 마찬가지다. '먼저 손을 쓰다' 하면 쉽게 알아듣겠지만, 치다니. 야구선수가 날아오는 공을 배트로 치듯이?    '치다'는 뜻이 다양하다. 우리는 공뿐만 아니라 손뼉도 치고, 피아노도 치고, 화투도 치고, 헤엄도 치고, 눈웃음도 치고, 악당의 목을 칼로 치고, 보신각의 종을 치고, 여자가 맘에 드는 남자에게 꼬리를 치고, 국에 간장을 치고, 앞마당에 닭을 치고, 경을 치기도 하고, 사기도 치고, 시험을 치고, 소리치고, 점을 치고, 북치고 장구치고, 그리고 깡패들의 비속어에 입각하여 떡도 친다.

 

요는 북이나 장구를 치듯 사람이 사람을 치는 습속이 사실 문제라면 문제다. 우리 불교 역사를 봐도 일찌감치 득도를 한 승려가 열심히 참선을 하고 있는 초년생 중을 막대기나 신발로 후려치는 고증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마치도 심한 우울증에 빠진 환자에게 정신과에서 쓰는 전기쇼크요법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때리다'는 또 어떤가. 당신은 공갈을 자주 때리는 사람을 싫어할뿐더러, 뒤통수를 때리는 기질이 있는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지 말 것이며, '뺨 맞을 놈이 여기 때려라 저기 때려라 한다'는 우리 옛날 속담을 듣고 분노할 것이며, 복수심이 강하기 때문에 '방망이로 맞고 홍두깨로 때린다'는 슬로건을 원칙으로 삼는지 모른다. 그리고, 코리아타운에 가서 저녁을 때리고 맨해튼 가까운 곳에서 영화 한편 때리자고 그녀에게 전화를 때릴까 말까 하다가, 당신은 생각을 바꾸고 홀로 맥주를 한 잔 때린 후 지금쯤 티브이를 보면서 멍 때리고 앉아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말고!

 

'beat'도 우리말의 '치다'만큼 의미가 다양하다. 'beat a dead horse (죽은 말 때리기)'라는 관용어가 있는데 쌍스러운 우리말 속담으로 '죽은 놈 불알 만지기'에 해당된다. 죽은 말이건 사람이건 비유법을 쓰기에 망정이지 정말 안타까운 정황이다.

 

'That beats everything!'은 직역으로 '저것이 모든 것을 때린다'이니 어떤 사실이 너무나 절실하고 믿을 수가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 쓰는 표현이다. '앞발 뒷발 다 들었다'라고 옮겨도 별로 큰 비약이 아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Beat it!'은 '꺼져!' 또는 '도망쳐!'라는 뜻. 사람이 도망치듯 걸어갈 때 발바닥이 땅을 탁탁 때리는 정경이다. 반면에 'Hit the road!' 하면 대개는 차를 몰고 떠나는 경우다. 

 

'hit it off'는 누구와 죽이 맞아 금세 친해진다는 말이고 'hit the right note'는 상황에 꼭 맞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의미로서 둘 다 누가 뭐래도 긍정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when the shit hits the fan'이라는 슬랭은 인분(人糞)과 선풍기의 역동적 관계가 연상되기 때문에 조잡하고 역겹게 들린다. 

 

'when the goulash hits the fan'이라는 표현도 있다. '굴라쉬'는 고기와 채소와 붉은 고추를 섞어 요리한 항거리의 전통 찌개로서 그 모양새가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하다. '사태가 난처해지면'이라는 이 인간적인 표현을 '육개장이 선풍기를 치면'이라 옮길 수 있겠지만 우람한 대변(大便)이 산지사방으로 돌풍처럼 흩어지는 양키적 원본 이미지를 도저히 쫓아가지 못한다. 근데 꿈에 그런 광경을 보면 분명히 대박일 텐데.  

 

© 서 량 2013.05.19-- 뉴욕중앙일보 2013년 5월 2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