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79. Tell Me About It!

서 량 2013. 4. 8. 11:32

 상대와 동감하고 싶을 때 감칠 맛나는 영어로 'Tell me about it!' 하는 수가 있다. 우리말로 '누가 아니래!'라 옮기면 뉘앙스가 잘 맞아떨어지는 말인데 사전에는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로 나와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와 한국말 사이를 방황하는 당신이 '누가 아니래'를 또 다시 역으로 번역하여 'Who says no!'라 하면 그건 말이 안 된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 온 나는 아직도 급하게 영어를 할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하는 한국말이 가끔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래', 혹은 '아니, 어쩐 일이야'라며 크게  놀라거나 기뻐할 때처럼 '아니'라는 말이 입에 고질적으로 붙어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당신도 '그게 아니라' 하며 끼어들고 싶겠지만.

 

 우리가 말끝마다 '아니, 아니!' 하며 심사를 추스르는 동안 양키들은 계속 'Well, well!' 한다. 오죽하면 미 40대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무슨 말이건 시작할 때 꼭 "Well..." 하기로 소문이 나지 않았던가.

 

 감탄사로 쓰이는 'well'은 여러 군데 인터넷 우리말 사전에 글쎄, , 아따, 아이고,라 나와있고 '좋아'라고 풀이하지 않는다. 'Good!' '좋아!'라 할지언정.

 

 우리는 누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을 때 네, 안녕합니다 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양키가 병원 복도에서라도 환히 웃으면서 'How are you?' 라고 기름진 목소리로 물어봤을 때 꼭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데 중학교 영어 교과서 대로라면 'I am fine. Thank you. And you?'가 정답이 되겠다.

 

 아니다. 나는 결코 그런 껄렁한 옛날 영어를 하지 않고 'I am good!'이라 요즘 식으로 쾌활하게 소리치며 좀 수상한 말을 내뱉는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자기가 '착하다'고 대답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지 않은가?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 받는 마당에서 갑자기 자기가 악당이 아니라고 역설하다니!

 

 'well' 'good'의 차이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표준영어에 의하면 누가 'How are you?' 라고 물었을 때 잘 지낸다는 뜻으로 'I am well.'이라 대답하는 영어가 가장 고전적인 영어다. 그러나 근래의 시대추세는 잘 지낸다는 것보다 '선량하게 (good)' 지낸다는 사연이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well'은 워낙 '우물'이라는 뜻이었다. 우물은 땅 속에서 솟구치는 지하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또 'well'은 고대영어, 고대 독일어, 라틴어, 전인도유럽어, 그리고 범어에서 하나같이 '좋다'는 뜻이면서 '의도하다(will)'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well' 'will'은 스펠링 하나 차이다.

 

 인간은 살기 위하여 지하에서 나오는 물을 원한다. 이것이야 말로  동서양을 막론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의도하는 것이라는 엄연한 진리가 여기에서 태어난다.

 

 'Let well enough alone'이라는 속담이 있다. 얼른 듣기에 문법상 말이 안 되는 표현이지만 우리말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1901년에 암살당한 25대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William McKinley)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말이기도 하지만 자고로 링컨을 위시하여 선한 사람의 삶은 허전하게 끝나는 수가 많다.

 

 '웰빙 (well-being)'은 이제 잘 산다는 뜻의 우리말이 됐다. 잘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저주처럼 들리는 '잘 먹고 잘 살아라'의 진짜 의미는 정작 무엇이던가. 'Tell me about it!' 말해 다오!

 

© 서 량 2013.04.07

-- 뉴욕중앙일보 2013 4 1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