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78. 생각과 생각 사이

서 량 2013. 3. 25. 20:03

 2013 3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 빙상연맹 세계 선수권대회 여자 피겨 스케이트 부분의 챔피언을 김연아가 획득했다는 소식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유나 킴 (Yuna Kim)"이 우아하고 절묘한 동작을 보일 때마다 미국인 해설자는 이런 찬사를 보냈다.

 

 Her skating is so effortless, gorgeous, and poignant. -- 그녀의 스케이팅은 아주 수월하고 화려하고 상쾌합니다. -- Oh, my goodness! -- 저런! -- Good heavens! -- 세상에! -- This is magnificent! -- 훌륭합니다! -- Oh, my! -- 이런!

 

 이 다섯 개 표현 중에 김연아를 추켜주는 말 말고 짤막짤막한 세 개의 감탄사에 신경을 집중하시라. 참고로 'Oh, my goodness!' 'Oh, my!' 같은 감탄사는 'God!''goodness!'로 변형됐거나 생략된 말이라고 영어사전은 풀이한다.

 

 그날 김연아의 동영상을 내 인터넷 블록 대문에 얼른 올려 놓았다. 이 양키 해설자는 말투로 보아 피겨 스케이팅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분명한데 어찌나 연거푸 감탄을 하는지 그야말로 화면에서 느낌표가 튀어나와 내 이마를 탁탁 때리는 기분이었다.

 

 느낌표를 'exclamation mark'라 한다. 'exclamation'의 동사형 'exclaim'은 라틴어로 '밖으로'라는 뜻의 'ex'와 소리친다는 의미의 'clamare' 가 합쳐져서 나중에 약간 변한 말이다.

 

 우리말의 '외치다'''이라는 의미의 '()''소리치다' '치다'가 합쳐진 단어라고 내가 학구적으로 우긴다면 당신은 익살도 정도문제라며 핀잔을 줄지 모르겠다. 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음 속에서 느낌이 지나치면 필시 밖으로 어떤 소리가 신음처럼 터져 나오는 인간의 심성을 어쩔 것이냐. 

 

 옛날 대학시절에 나는 깜짝 놀랐을 때 "우와!" 하고 소리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끔은 "우와~!" 하고 말끝을 길게 끌기도 했다.

 

 요즈음 한국 티브이에서 한국인들이 "와우!" 하는 장면을 본다. 머리를 가을철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들인 젊은이들이 되도록 웃는 낯으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프로그램에서 "와우!" 또는 "오 마이 갓!" 같은 코리언 악센트가 물씬한 영어를 자주 듣는다. 어찌타 우리 고유의 감탄사 '우와!' '와우!'로 변했나.

 

 'wow'1510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처음으로 쓰인 감탄사였다. 이 말은 영어에서 한 동안 거의 쓰이지 않다가 장장 400여 년이 지난 20세기에 다시 고개를 쳐들었고 급기야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던 히피족들이 탄생한 1960년대에 미국에서 와장창 유행하기 시작한 아주 이상한 말이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내가 거의 매일 듣고 말해온 감탄사!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에헴, 'wow'를 위아래로 뒤집어 놓으면 'MOM'이라는 단어가 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감탄사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20세기에 대두한 여성상위시대에 어울리는 감탄사처럼 보이는데... 엄마 만세!

 

 감탄사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interjection', 우리말의 '간투사'도 있다. 'inter''중간'이라는 뜻이고 '~ject'는 던진다는 뜻. 그래서 이 말은 생각과 생각 사이에 던져지는 동서양의 인간감정을 대변한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사회생활에 비유하자면 간투사란 인맥 때문에 발버둥치지 않는 독립적인 인간의 자유로운 발언이다.

 

 2013 3월에 김연아의 독자적인 몸놀림을 보면서 간투사를 연발한다. 이럴 때 당신과 내 생각들 사이에 신선한 간투사라도 툭! 집어넣으면 어떨까. "Oh, my!"

 

 

© 서 량 2013. 03.23

-- 뉴욕중앙일보 2013 3 2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