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전 상서
송 진
그간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신지유
저승에서는 아직도 이런 인사치레가 유용할지도 모르것네유
저도 저승 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시유
저승에 갔을 때 행여 울 엄니가 저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저에게는 몽고반점도 없으니
에구머니나, 그걸 확인하려면 아랫도리를 까야 하는데
하마 고희를 바라보는 제가 삼십 대 엄니께 실수라도 저지르면 어쩌쥬
엄니가 육이오 때 미군 폭격으로 먼지가 되어 승천하셨다는 것 말고는
별로 엄니에 관하여 아는 게 없다는 게 제겐 젤 슬펏시유
엄니의 눈길도, 목소리도, 손길도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가끔 저는 어느 별에서 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했구먼유
근데 엄니, 진즉 에미 잃은 염소새끼의 형국은 불문가지였겠지만
이즉껏 살다 보니 세상은 엄청 공평허더구먼유
엄니는 지 나이만큼 살아 보지 않아서 모르시것지만
이 세상 엄니들의 진자리 마른 자리 타령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더라구유
그야말로 귀신도 까무러칠 만큼 끔찍한
황천길 접어드는 노친네 공양에 허덕이며
살아서 지옥을 겪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는 엄니가 안 계신 것에 늘 감복하고 있어유
엄니! 고마워유!
생골 툇마루에 걸터앉아 찍은 퇴색한 사진 속의 젊은 엄니를
평생 여친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품고 살 수 있게 하여주셔서
증말 고마워유!
이 은혜 백골난망이어유!
'김정기의 글동네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제 / 최양숙 (0) | 2013.04.27 |
---|---|
나의 왼쪽 / 윤지영 (0) | 2013.04.24 |
대기자 / 윤지영 (0) | 2013.04.13 |
치과 의자 / 최양숙 (0) | 2013.04.12 |
감꽃향 나는 밤 / 윤영지 (0) | 2013.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