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5일에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신라시대 진성여왕 이후 1115년 만에 다시 한 여성이 국가원수의 자리에 오른 감개무량한 날이다.
짐짓 머리에 왕관을 올려 놓은 왕이거나 있는 그대로의 맨머리를 보여주는 대통령이거나 한 개인이 한 국가를 대표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라면 대통령은 좋은 음악을 창출하는 지휘자(指揮者)다.
지휘자의 지(指)는 '가리킬 지'이면서 손가락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남들을 리드할 때 주로 손가락을 사용한다. 때에 따라 국민들에게 심하게 삿대질을 해대는 무섭고 성가신 지도자도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大統領) 이라는 한자말을 옥편에서 찾아 보고 '거느릴 통'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통(統)자는 '실 사' 변에 '채울 충'으로 구성된다. 실을 잔뜩 채운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린다는 뜻일 것이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훌륭한 통치자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인맥을 다스리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거늘.
통제(統制)라는 의미의 'control'의 어원을 공부했다. 'control'은 'contra (반대)'와 'roll (뒹굴다)'가 합쳐진 단어다. 직역하면 '뒹굴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자고로, 에헴, 인간들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아무
때 아무데서나 함부로 뒹구는 행동 따위를 삼가야 하느니라.
1950년대에 세계를 열광시킨 'rock and roll (로큰롤)'의 'roll'도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며 마치도 남녀가 서로 어울려 뒹구는 작태다. 일지기 1934년부터 흑인들이 쓰기 시작한 슬랭의 'roll'은 섹스를 에둘러 일컫는 말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무릎을 들입다 흔들며 야한 몸짓으로 노래하던 시절에 보수층 미국인들이 로큰롤이 'obscene (음탕)'하다고 손가락질을 한 것도 일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친 김에 중언부언하자면 동양의 지도자는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수많은 인맥을 거느리는 스타일이었지만 서구적 통치자는 본능적인 쾌락을 금지하는 청교도적 사상으로 사람들의 헬렐레한 마음을 통제했다.
'charisma'가 고대 희랍어로 '친절하다 (kind)'는 의미의 'kharis'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리더의 특징 중 첫 번째로 손꼽히는 카리스마를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언어학적 진리를 깨달은 셈이다. 'charisma'는 영어에서 15세기에 접어들어 신이 부여한 재능이라는 뜻이었고 남들을 매료하는 지도력이라는 현대적인 낱말이 된 것은 1930년쯤이었다. 그래서 카리스마는 다 조상대대의 핏속에 흘러야 한다.
'lead'는 기원전 3,500년에 쓰였던 언어로 추정되는 전인도유럽어에서 '앞장서다'는 뜻이었고 고대영어로 여행하다, 혹은 안내한다는 말이었는데 기원후 14세기에 이르러 남들을 우선해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경쟁적인 의미로 변했다.
서구적 의식구조로 보자면 'leader'는 분홍색 운동모자라도 쓴 채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앞에 치켜든 여행사 가이드나 다름없다. 동양의 지도자들은 뒷전에서 집게손가락을 분주하게 흔들며 남들을 지도편달 하려고 애를 쓰는 그림이지만 서구적 리더들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온몸으로 솔선수범하여 다른 사람들을 앞장서는 규범을 보였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지침을 근본 삼아 인맥을 무난히 엮어가기를 바란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남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대신에 전 국민을 앞장서서 북한과 중국과 일본의 압력을 잘 다스리는 훌륭한 통치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 서 량 2013.02.25
-- 뉴욕중앙일보 2013년 2월 2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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