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77. 시어머니 옆구리

서 량 2013. 3. 11. 08:29

  2013 3월 초에 북한이 핵무기를 들먹이며 남한과 미국을 위협하는 작태가 전 세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영자 신문들은 하나같이 북한의 도발적인 언사(provocative rhetoric)를 보도했다.

 

 'provoke (도발하다)'는 라틴어의 'pro (앞으로)' 'vocare (목소리)'가 합쳐진 말로서 '앞으로 목소리를 내다'라는 의미다.

 

 누구를 도발시킨다는 것은 '앞으로 나와라!' 하며 큰 소리로 상대의 공격성을 초대하는 행위다. 조무래기 소녀 영희가 '철수야, 나와라. 나하고 놀자' 하는 정황이 연상되는 표현이다. 만약에 성인 여자가 성인 남자에게 그런 수작을 걸었다면 아뿔싸, 그건 다분히 'sexually provocative (성적으로 도발하는)' 장면이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sanctions)를 가하기로 만장일치를 보았다 한다. 제재(制裁)'규칙 혹은 관습을 위반했을 때 내리는 제한이나 금지'라는 뜻으로서 상대방을 옥죄는 억압적인 말이다.

 

 웬만한 한국 기자들이 원어 그대로 '생션'이라 발음하는 'sanction'은 이중언어에 시달리는 우리나 영어가 모국어인 양키들에게나 참 혼돈스러운 단어다. 이 참에 당신도 한 번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라.

 

 'sanction'은 허용이라는 뜻이면서 사회적 구속력, 또는 법령이나 규칙 위반에 대한 제재나 금지라는 뜻이다. 성급하게 말해서 한 단어에 '허용''금지'라는 상반된 의미가 공존하는 이상한 단어다.

 

 천주교 성가에 '상투스 (santus)'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santus'는 워낙 라틴어의 'sacred (성스럽다)'라는 뜻으로 'saint (성현)', 하다못해 산타클로스나 산타마리아의 '산타'에 해당된다. 이렇게 성스러움은 모든 것을 허용하지만 또 한편 모든 것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위협(威脅)은 또 무언가.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풀지 못하고 또다시 어려운 한자를 써서 풀이하는 옥편은 위협을 '위엄 위' '위협할 협'이라 해석한다. ''에는 '시어머니'라는 뜻이 있고 ''에는 '옆구리'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중국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가장 위협적인 인간의 모습이란 집안의 권세를 대표하는 시어머니가 손을 휘두를 때 슬쩍 들어나는 옆구리의 살집이 연상된다. 저 거창한 한자어, 위풍당당(威風堂堂)이라는 사자성어는 장군의 당당한 풍채를 일컫는다기보다 시어머니의 위압적인 몰골을 묘사하는 말이다.

 

 'threat'가 영어에서는 상대를 위협한다는 뜻인데 전인도유럽어의 'trud'에서 파생됐고 본래의 뜻은 '밀다(push)', '누르다(press)'였다. 네발동물들은 상대방을 위압하기 위하여 이빨을 들어내고 으르렁대지만 고대의 양키들은 남을 떠밀거나 레슬링 선수처럼 올라타고 협박했던 것이다. 동양적 위엄은 권위에서 왔고 서구적 위력은 실력에서 왔다.

 

 북한은 이제 아예 핵무기를 써서 남한과 미국을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 하겠노라 위협한다. 이것은 심통 사나운 시어머니가 옆구리를 여실히 내어놓는 꼴이다.

 

 'attack'는 맨 마지막 스펠링 하나만 다른 'attach'와 말의 뿌리가 같다. 공격한다는 무시무시한 개념, 'attack'는 붙는다는 뜻의 'attach' 16세기 경에 거칠고 사나운 의미로 변화한 말. 그래서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게 첨부파일처럼 붙기를 원하면서도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게 위협한다. 그나저나 '한판 붙자!'는 말처럼 공격적인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attach'에는 애착심을 가지고 사모한다는 뜻도 있다. 북한은 미국과 남한을 애타게 사모한 나머지 핵무기를 내세우며 우리를 도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서 량 2013.03.10

-- 뉴욕중앙일보 2013 3 1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