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75. 고기를 좋아하세요?

서 량 2013. 2. 11. 06:23

 내 어릴 적 할머니는 고기를 '괴기'라 하셨다. 그리고 뜨거운 것을 잘 먹어야 남의 눈에 '괸다' 하셨던 것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기의 어원에 대하여 문헌을 찾아 보며 연구했지만 지금껏 큰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차 요 얼마 전에 영어 관용어의 'stick to one's ribs'가 생각나면서 이거다! 싶었다.

 

 이를테면 당신의 양키 친구가 'I like steak. It sticks to my ribs'라 말했다면 그건 '나는 스테이크를 좋아해. 그걸 먹으면 속이 든든해'라는 뜻이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도넛 따위를 먹으면 금방 배가 고파지지만 동물성 단백질이 충만한 쇠고기를 먹으면 오랫동안 뱃속이 든든하다는 말이다. 그걸 음식이 '갈비뼈에 붙는다'고 하다니!

 

 우리들끼리 얘기지만 이렇게 양키들은 사고방식이 좀 쌍스러운 데가 있다. 요컨대 '붙는다'는 개념은 소위 개들이 길거리에서 흘레붙듯이 그 연상작용이 거시기하지만 할머니가 말씀하신 남의 눈에 괸다는 표현은 남의 마음 속에 호수처럼 고여있다는 뜻이려니 그건 즉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다.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 가사에 나오는 '어머니같이 괴실 이 없어라'도 어머니처럼 '고이실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던가.

 

 고기의 어원에 대하여 이렇다 할 학설이 없는 마당에서 차제에 나는 고기의 어원이 '고이기(괴기)'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서구적 고기가 갈비뼈에 들러붙듯이 우리의 고기는 우리 몸 속에 고인다는 뜻에서 생겨났다고 우길 생각이다.

 

 고기에 해당되는 영어의 'meat'를 살펴보았다. 고대영어의 'mete'에서 변화된 이 말은 워낙 '음식'이라는 뜻이었으니 서구의 원시인들의 고기를 주식으로 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은 채식보다 육식을 즐겼던 것이다.

 

 구글 검색을 했더니 일지기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에서 말을 잡아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베트남, 한국, 일본, 하와이, 멕시코, 스위스에서 개고기를 먹었다 한다. 13세기 말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중국인들이 사람고기를 먹는 장면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는 것도 배웠다.

 

 인간은 완전 잡식성 동물이다. 나 또한 세종대왕의 식성을 닮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농경시대 체질보다 수렵시대의 'DNA'가 내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것 같다. 남의 살이 좋은 걸 어쩌랴.

 

 삼겹살? 내 어릴 적 예민한 나이에 정육점에 가면 돼지고기 허연 살 껍질에 엷은 잉크 빛 도장으로 반듯한 직사각형 안에 '검사필'이라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옆쯤에 면도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 시커먼 돼지 털이 숭숭 박혀있었다. 그 메슥메슥한 기억 때문에 나는 아직도 삼겹살을 먹지 못한다. 유대교에서는 아예 종교법칙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미국에 오래 살아온 당신은 어느 양키가 'What's your beef?'라고 안면을 찌푸리며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네 쇠고기는 뭐냐?'가 아니라 '뭐가 불만이야?'라는 속어다.

 

 1888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이 미국슬랭은 1930년대부터 정식으로 불만이나 불평이라는 뜻으로 널리 통용된다. 미국 군인들이 군용식품으로 나오는 쇠고기 통조림에 고기의 분량이 적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는 사연이다.

 

 슬랭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영어실력을 양키들에게 과시하고 싶어서 미치고 환장하는 당신은 '쟤는 뭐가 불만이야?' 라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을 때 'What's his beef?' 하며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느끼한 표정으로 말해보기를 바란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솰라솰라 어찌어찌 말을 이어가야 할지는 물론 당신 재량에 딸렸겠지만.

 

© 서 량 2013.02.10

-- 뉴욕중앙일보 2013 2 13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