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에 대한 속담을 살펴보았다. '값싼 게 비지떡'이라며 떡의 품질을 차별화하는 우리의 엘리트 기질을 인정한다. 미각만으로는 부족해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하는 당신과 나의 취향도 알아냈다.
떡에 상응하는 개념으로는 파이(pie)가 있다. 이를테면 'pie in the sky'를 '그림의 떡'이라 하면 훌륭한 번역이다.
'as easy as pie'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뜻. 그러니까 어느 친절한 직장 동료가 "Even a child can do it. It's as easy as pie!" 라 어느 날 말했다면 "그건 어린애도 할 수 있어. 누워서 떡 먹기야!" 하며 당신을 격려하는 말이다.
'cake'도 우리의 떡과 비슷한 비유법으로 자주 쓰인다. 19세기 중엽에 생긴 미국영어 슬랭에 'cakewalk'가 있는데 남부 흑인들이 동네 공원에 모여 음악에 맞춰 건들건들 멋지게 걸어가면 상으로 케이크를 주는 놀이에서 유래한 말이다. 싱겁게도 웬만하면 모두들 다 상을 받기 때문에 아주 쉬운 일이라는 뜻이 됐다. 그래서 'It's a cakewalk'는 'It's a piece of cake' 처럼 '누워서 떡 먹기'라는 의미다.
우리는 누워서 떡을 먹고 싶지만 그들은 일정 거리를 걸어가야만 케이크를 먹었다. 우리의 편안한 자세에 비하여 서구적 사고방식은 직립적이다. '미친 척하고 떡 가게에 엎어진다'는 속담만 해도 누워서 떡을 먹듯이 수평적 자세로 떡을 먹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You canno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라는 말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양자택일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아주 씨알머리 있는 격언이다. '양손의 떡' 할 때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쩔쩔매는 정황이 결코 아니다.
양키들은 케이크 말고 가끔 모자도 먹는 모양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의미로 'I will eat my hat if...'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왜 손에 장을 지지는가. 옛날 우리 선조들이 죄인을 고문할 때 펄펄 끓는 간장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형벌이 있었단다. 그러니까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은 어떤 상황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경우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은 어떤가. 영어로는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 한다. 깡패들은 저속한 말투로 '남의 X이 더 커 보인다'라 한다.
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가. 정신과적으로 분석하면 그 마음은 스스로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여튼 나는 과대망상보다는 겸손한 사람의 마음씨를 훨씬 더 좋아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치 국부터 마신다는 속담도 있다. 떡이 너무 빡빡하기 때문에 김치국을 마셔가면서 끼룩끼룩 떡을 먹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또 어떤가. 오래 제사를 지내지 못한 죄의식에 시달리던 중, 이게 웬 떡이냐, 싶게 눈앞에 떡이 떡! 나타나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다시 파이 얘기로 돌아간다. 'eat humble pie', (겸손한 파이를 먹다)는 자신의 잘못을 굴욕적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면서 'eat crow', (까마귀를 먹다)와 같은 뜻이다. 영어에 이렇게 이상한 말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떡도 싫고 파이도 싫고 달짝지근한 케이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그 대신 국수는 참 좋아요. 우리 속담에 '오래 살고 싶으면 국수를 먹어라'가 있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국수 길이가 워낙 긴 바람에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산다나 어쩐다나.
© 서 량 2013.01.27
-- 뉴욕중앙일보 2013년 1월 3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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