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쁘고 마음에 쏙 들었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우리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눈에 넣다니. 바늘 구멍으로 낙타가 들어간다는 식으로 들리지 않는가.
'the apple of one's eye'라는 말이 떠오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누구를 예쁘고 귀여워한다는 바로 그 표현이다. 만약 당신이 자식들 중에 특히 장남을 편애한다면 그때 'He is the apple of my eye!"라고 말할 것이다. '쟤는 내 눈의 사과야!'
구글 검색을 했더니 '눈에 사과'는 성경 시편 17장 8절의 "Keep me as the apple of your eye..."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한다. 우리말로는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라 한글성경은 옮겼더라.
'apple'은 히브리어로 '눈동자'를 의미했다. 'apple'에는 또 '딸'이라는 뜻도 있다. 당신이 점심시간 같은 때 아삭아삭 깨물어 먹는 사과가 눈동자 혹은 딸이라니.
이제 목으로 넘어갈까나. 우리말로 '모가지'는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모가지가 달아났다는 것은 직장에서 'fire'당했다는 뜻. 같은 비유법이라도 양키들은 누구의 직업을 말살할 때 서부영화에서처럼 탕, 탕 총을 쏘면 고만이지만 우리는 꼭 그렇게 참수(斬首)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것도 모자라 모가지가 뎅겅! 잘린다는 의태어까지 쓴다. 반면에 동사로 쓰이는 'neck'는 남녀가 서로 껴안고 애무한다는 뜻이라니, 똑같은 사람 목을 두고 동서양의 언어의식이 이렇게 판이하다.
불량배 혹은 깡패를 우리 속어로 '어깨'라 한다. 다분히 위협적이다. '어깨!'는 팔이나 다리에 비하여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다.
'shoulder to shoulder'는 어깨를 나란히 뜻이다. 어깨를 비빈다는 뜻으로 'rub one's shoulders with somebody'가 있는데 예를 들어 'He rubs his shoulders with the company's CEO' 하면 그가 회사의 회장님과 일 테면 서로 말을 놓는 사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동네의 어깨들을 두려워하지만 양키들은 '팔'이라면 하던 일도 멈춘다. TV 뉴스에서 누가 감옥에서 탈출했다면서 'He is armed and dangerous' 라고 말한다면 무기를 소지한 탈옥수가 위험천만하다는 소식이다. 어니스트 헤멩웨이의 '무기여 안녕' (A farewell to arms)이라는 소설 제목도 마찬가지 용법이다. 군대를 'army'라 하는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
'arm in arm'은 무기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이 팔짱을 꼈다는 말이고 'put one's arms around somebody'는 누구를 껴안는다는 뜻이다. 'arm'은 그렇게 화기애애하고 황홀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다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 'You are pulling my leg'는 '너는 내 다리를 잡아당긴다'라 이상하게 번역할 수 있지만 슬랭으로 '너 나를 놀리는구나'라는 뜻이다.
'slap'은 찰싹 때린다는 뜻인데 어디를 때리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a slap in the face'는 아주 모욕적이고 'a slap on the wrist'는 손목을 살짝 때리는 정도의 가벼운 형벌이고 'a slap on the back'는 남을 격려해주기 위하여 등을 토닥거려준다는 관용어다.
당신이 누구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려주고 싶은 욕망을 견딜 수가 없을 때 필히 얼굴을 피할 뿐더러 나무라는 듯 손목을 살짝 건드리는 것도 좋지만 역시 누가 뭐래도 상대의 등허리를 토닥거려 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 전에 우선 상대를 가볍게 껴안아야 되겠지만.
© 서 량 2013.01.14
-- 뉴욕중앙일보 2013년 1월 16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컬럼| 175. 고기를 좋아하세요? (0) | 2013.02.11 |
---|---|
|컬럼| 174. 떡 (0) | 2013.01.28 |
|컬럼| 172. 비참한 사람들 (0) | 2012.12.31 |
|컬럼| 171.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0) | 2012.12.18 |
|컬럼| 170. 죄의식, 혹은 부끄러움 (0) | 2012.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