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71.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서 량 2012. 12. 18. 12:56

 스패니시 악센트가 심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그들의 발음이 미국 본토 영어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공부를 은근히 하게 된다. 얼마 전 세차장에서 차의 일부분이 잘 씻어지지 않은 듯해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수건으로 닦는 소년에게 항의를 했더니 그가 "!" 해서 깜짝 놀랐다.

 

 이민 온지 얼마 안 되 보이는 그 아이는 'paint'''이라 발음하면서 어느 차가 내 차에 살짝 스쳐 묻혀 놓은 페인트를 싹싹 문질러 없앤다. 허기사 나도 우리들끼리 말할 때 페인트를 '뼁끼'라 하지 않는가.

 

 스패니시 영어는 'p'를 경음화해서 '쌍비읍'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심할 뿐더러 가벼운 비음인 'n' 소리를 강한 콧소리로 'ng~'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믿기 힘들겠지만 심지어는 'and''~'이라 발음한다.

 

 미국에 40년 가까이 살았다지만 난들 어찌 외국인 악센트가 없겠느냐 마는 'and' '~'이라 하는 식으로 그들이 'one' ''이라 하지 않고 '~'이라 발음할 때 잠깐 움찔하게 된다.

 

 남미 출신 정원사가 'one' '~'이라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임금 왕()'이고 다음은 왕소름, 왕만두, 왕따 같은 말이다.

 

 다시 'one' '하나'를 뜻하는 차원으로 돌아와서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티격태격 다투는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특히 남녀가 하나로 합친다는 개념은 다분히 성적인 면이 있다.

     

 'one' 12세기경 고대영어의 'an', 고대 독어의 'ein', 그리고 라틴어의 'unus'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긴 말이다. 인류의 진화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12세기 이전에 살았던 양키들은 하나와 둘, 즉 복수와 단수 개념이 없었다는 이론이 성립한다.

 

 1906년에 'one and only'이라는 관용어가 생겨났다. 근래에 '착한 남자'라는 한국 TV 드라마가 만들어 낸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이라는 유행어.

 

 히피족들이 극성을 떨던 60년대의 속어, 'one night stand' '하룻밤 풋사랑'이라 해석해야 옳을 것 같기로, 에헴, 지금 내 변론은 'one'이라는 경건한 단어에 'night'를 합성했더니 어찌 이리도 음란한 뜻으로 변하느냐 하는 느낌이다. 허기사 'one night stand'는 직역해서 '하룻밤 서기'라는 뜻인데 이 말을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표현이다. ? 하루 밤만?

 

 한국 대통령 선거를 하는 12월에 Dashing through the snow / In a one horse open sleigh / O'er the fields we go / Laughing all the way. (흰 눈 사이로 / 썰매를 타고 / 달리는 기분 / 상쾌도 하다), 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다.

 

 그런데 'In a one horse open sleigh' 할 때 'one horse'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걸. 나는 이 노래의 번역자가 은근슬쩍 'one horse'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것에 대하여 깊은 동정심을 품기로 한다.

 

 'one horse' 1853년에 생긴 표현으로 마을이 너무 작아서 그 지역 전체에 걸쳐 말이 한 마리 밖에 없다는 데서 유래한 '조그만'이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번역한 한국사람은 '한 마리 말이 끄는 열린 썰매'라 옮길까 하다가 말이 이상하다 싶어서 그 부분을 생략했을 것이다.

 

 그런 것 쯤이야 아무렴 어때, 하며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2012년 연말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었을 때쯤, 박근혜 혹은 문재인 둘 중에 하나가 내 그리운 한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상상을 하노라니 더더욱 그렇다.

 

© 서 량 2012.12.17

-- 뉴욕중앙일보 2012 12 19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