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68. 파워 (Power)

서 량 2012. 11. 5. 14:33

 2012 10월 말경 뉴욕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 때문에 나흘 동안 정전사태를 겪었다. 난방이 끊어진 집안 여러 곳에 촛불을 밝혔지만 암흑에 가까운 어둠을 헤치면서 창세기 1 3절에서 신이 "Let there be light"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던 구절이 자꾸 떠올랐다. 오죽하면 4절에는 신이 보기에 빛이 좋았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light'는 고대영어로 'leoht'라 했는데 가볍고 빠르거나 빛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light-hearted'는 마음이 가볍다는 말이고 'candle light'는 촛불을 뜻한다. 빛보다 가볍고 빠른 물체가 또 있을까. 빛은 경쾌하지만 암흑은 굼뜨고 무겁다.

 

 그러나 목에 힘주기를 좋아하는 당신은 도가 지나친 가벼움은 경박하다며 눈썹을 곤두세울지도 모른다. 엄숙주의를 추종하는 양키들도 'make light of something' 하면 어떤 생각이나 상황을 업신여긴다는 뜻이 된다.

 

 정전을 'no electricity'라고 외국인 티를 내며 말해 보라. 당신의 양키 친구는 무심코 'power outage'라고 되받아 말할 것이다. 전기를 'power'라 말하는 것은 표준영어이고 무엇이 끊겼다는 의미인 'outage' 1905년에 생겨난 순수 미국영어로 통한다. 전기를 돈처럼 힘으로 보는 시각은 문명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처사다.

 

 'electric' 1640년에 영국의 'Thomas Browne'이라는 의사가 대중화시킨 말로서 라틴어의 'electrum'과 희랍어의 'electron'에서 유래했고 호박(琥珀), 또는 호박색이라는 뜻이었다. 호박은 나무의 진 따위가 땅속에서 다른 물질과 화합하여 굳어진 반투명체의 광물로서 마찰하면 전류를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 내 어릴 적 커다란 눈물방울처럼 생긴 전구도 노르스름한 빛이었었다. 고전적인 전등은 호박색 빛을 내뿜는다.

 

 'power' 13세기에 생겨난 말로서 능력, , 활기 따위를 지칭한다. 'the powers that be'라는 이상한 표현이 있는데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관용어다. 이 말은 로마서 13 1절에 나오는 'the powers that be are ordained of God'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다.)에서 나온 말이란다.  

 

 힘을 뜻하는 한자 ''은 그 생김새가 농구(農具)의 쟁기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혹자는 사람이 팔꿈치를 직각으로 꾸부리고 힘을 자랑하는 모습이라 주장하지만 ''은 누가 봐도 쟁기 모양이다.

 

 동양인들이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신의 도움을 받거나 어설프게 팔꿈치를 세우는 것보다는 쟁기 같은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창조주를 향한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이나 여건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시의 숲에서 천둥 번개가 최초의 불을 일으켰을 때 인류는 동물처럼 무서워서 도망을 치는 대신에 뜨거운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불의 따스한 특성을 배웠다. 석기시대의 뾰족한 돌멩이도 생존을 위한 도구였고 현대의 위성TV, 자동차, 컴퓨터, 혹은 그랜드 피아노처럼 무릇 우리의 힘과 기쁨 또한 도구에서 온다.

 

 망치 같은 연장을 뜻하는 'tool'은 고대영어에서 '준비하다'는 뜻으로도 쓰였는데 1550년에 급기야 'penis'를 뜻하는 슬랭이 돼버린 점도 흥미롭다. 종족보존을 준비하는데도 도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2012 10월 나흘간 정전 때 내 도구는 몇 개의 양초와 사이즈 D 배터리를 듬뿍 품은 회중전등이었다. 휴대용 전기용품으로 어둠을 쟁기질하면서 나는 빛과 파워를 갈구했다.        

 

© 서 량 2012.11.04

-- 뉴욕중앙일보 2012 11 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