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끝에 '머리'를 붙이면 말이 속되게 들리면서 좀 재미있는 뜻으로 변하는 느낌이 든다. 버릇이 없다는 말 대신 버르장머리가 없다 하고 주변이 없다는 것을 주변머리가 없다는 둥 진저리가 나는 대신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식으로 대상을 얕잡아 부르는 우리말의 묘미가 참으로 대단하다. 게다가 밥상을 밥상머리라 말해보라. 어딘지 다정하게 들리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머리'의 위력이다
우리는 머리칼과 두뇌와 고개를 분별하지 않고 죄다 머리라 한다. 그래서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가고 누구는 머리가 좋으니 나쁘니 하거니와 상관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조아린다는 표현을 쓴다. '머리가 없는 사람'(?)을 대머리라 하고 잔 재주를 부리는 두뇌를 잔머리라 하고 걱정이 많아서 두통이 일어날 상황에서 골머리가 아프다 한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hair'와 'brain'과 'head'를 엄격하게 구별해서 말한다. 만약에 당신이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는 뜻으로 "I cut my head in the barbershop," 한다거나 상대의 머리가 좋다는 말을 "Your head is good," 하면 이발소에서 사람이 피 투성이가 되는 장면이 떠오르고 상대방 귀두(龜頭)의 성능이 좋다는 낯뜨거운 발언이 돼 버리고 만다. 실상 'head'는 슬랭으로 음경의 머리 부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머리의 비속어인 대가리는 어떤가. 음악 하는 사람들이 악보를 볼 때 콩나물대가리를 읽는다 하고 멋이 없는 것을 멋대가리가 없다고 표현하는 것도 좀 생각해 볼 일이다. 맛이 없는 것도 맛대가리 없다 하고 재수가 없다는 대신에 재수대가리가 없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리건 대가리건 하여튼 '없다'는 말과 연결이 되는 부분은 다분히 부정적으로 들린다. 인정머리가 없고 소갈머리가 없는 사람이 씨알머리 없는 말을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어떤 경우이건 머리가 없다는 표현은 아주 황당하고 참담한 지경인 것이다. 같은 말을 해도 무슨 말이 그런가. 머리가 없다니.
듬직하지 못하고 경망스러운 양키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 때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들이 "Heads or tails?" (앞이냐 뒤냐?) 말할 때 다분히 동물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개나 고양이를 마주할 때 머리가 앞에 있고 꼬리가 뒤에 있기 때문에 머리를 늘 앞이라 하고 뒤는 꼬리라 부른다. 그들은 또 상대가 하는 말이 두서가 없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에 "I cannot make head or tail of what you are saying."이라며 투덜댄다.
영어도 'head'를 말끝에 붙여 복합명사를 만들면 재미난 뜻이 되는 수가 있다. 'bird head'는 문자 그대로 새대가리라는 뜻이지만 'egghead'는 달걀머리가 아니라 지성인,소위 '인텔리'를 지칭한다.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말의 돌대가리는 영어에는 없고 그 대신에 'airhead'가 있다. 우리의 멍청이는 머리가 돌처럼 무겁지만 양키들의 얼간이는 머리 속에 풍선처럼 가벼운 공기가 충만한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사고방식이 정반대인 또 하나의 본보기다.
아니다. 동서양이 꼭 그렇게 상반된 것만은 아니다. 'a good head on one's shoulder' (어깨 위의 좋은 머리)는 우리말과 똑같이 머리가 좋다는 말이다. 누구의 지성적인 면을 추켜 줄 때 "You have a good head on your shoulders." 하면 아주 정겨운 영어가 된다. 두뇌가 남달리 명석한 당신은 상기한 바 슬랭의 성적(性的)인 암시를 피하기 위하여 머리의 신체적 위치를 분명히 해 주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 서 량 2012.10.22
-- 뉴욕중앙일보 2012년 10월 24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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