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166. 빅 버드 (Big Bird)

서 량 2012. 10. 9. 10:52

 

'big'은 13세기에 힘이 세다(powerful, strong)는 말이었고 14세기에 접어들면서 크다는 의미로 변했다. 그리고 1915년에 'big house'라는 슬랭이 생겨났는데 감옥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도 '큰집'은 감옥이라는 은어다.

 

강하거나 큰 것은 무섭다. 내 어릴 적 강한 사람들은 다 어른들이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몸이 컸다. 당신과 나의 유년기는 사실 어른이라는 감옥으로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2012년 10월 3일 대선 토론에서 밋 롬니는 미 정주의 긴축재정을 위하여 공영방송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라면 어린이 프로그램 'Sesame Street'가 생각나고 샛노란 깃털의 'Big Bird'가 떠오른다. 저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새. 굵은 남자 목소리로 말하는 새.

 

언론은 즉각 롬니가 빅 버드를 죽이려 한다고 떠들었다. 더구나 그는 공영방송을 지원하기 위하여 미국이 중국에서 돈을 빌리고 싶지 않다며 말을 비비 꼬았던 것이다.

 

한 코미디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My son asked me where babies come from. I told him they are all made in China." -- 아들놈이 아기가 어떻게 생기냐고 묻길래 다 중국에서 만들어 낸다 했다.-- 이것은 요사이 모든 우리의 생활용품이 죄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사실에 착안한 아주 재미난 농담이었다.

 

독일과 홀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전설에서 '황새(stork)'가 아기들을 데려온다 했다. 황새는 우리가 추종하는 민속신앙, '삼신할머니'의 서구적 발상이다. 'stork'를 쉬운 영어로 'big bird'라 한다. 삼신할머니가 상징하는 여성적인 힘에 비하여 양키들은 남성 위주의 발상을 한다. 이것은 남성이 신(神)을 대표하는 서구적 사고방식과 통렬하게 상통한다.

 

'stork'는 고대영어로 'stiff, strong'이라는 뜻이었다. 이쯤 해서 당신은 황새가 남성의 상징이라는 연상을 도저히 피할 도리가 없다. 딱딱하고 힘이 세 생체가 아기들을 데려오다니. 어딘지 좀 수상하지 않은가.

 

중국인들은 자기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착각에서 국가 이름에 '가운데 중'을 썼다. '한'은 충청도 대전(大田)의 옛말 '한밭' 처럼 크다는 뜻. 몽고말로 징기스칸의 '칸'에 해당된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도 큰 강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단다.

 

이상하다. 지구상에서 미국 다음 4번째로 땅이 넓은 중국은 국가의 사이즈보다 위치에 관심을 두었고 땅 면적이 중국 면적의 96분의 1밖에 안 되는 대한민국 국호에는 크다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갔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노.

 

정신과 용어에 'Short Man Syndrome', 이른바 '나폴레온 콤프렉스'라는 말이 있다. 키가 작은 남자가 정신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고 치열하게 발버둥을 치는 증후군. 우리는 짐짓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식물에 적용시켜서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한다. 마늘도 양파도 아닌 왜 하필이면 고추인지.

 

이것이 시방, 사이즈가 빅딜이라는 말이지. 크기에 연연하는 당신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 살펴보라. 주먹을 쥔 상태에서 중국처럼 중심에 위치하면서 가장 크고 긴 손가락인 중지(中指)를 하늘 쪽으로 힘차게 세워보라. 누가 당신에게 그런 모션을 썼을 때 속어로 'He gave me the bird'라 한다. 아닌 밤중에 새를 주다니. 이 제스처의 손 모습이 어쩔 수 없는 남성의 성기능을 연상시키더라니.

 

그나저나 'big bird'를 대조(大鳥)라 번역할까. 아니면 거조(巨鳥)라 할까나. 한자와 우리말을 골고루 섞어서 '큰 조'라  해야 할지.

 

© 서 량 2012.10.08

--뉴욕 중앙일보 2012년 10월 10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