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에는 런던 올림픽 뉴스 말고 기분 좋은 소식이 또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 한국 가수 '싸이(Psy)'가 인터넷의 유튜브에 올린 '강남 스타일'이라는 케이팝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유쾌한 난리였다. 당신도 알겠지만 'K-Pop'은 'Korean Pop Song'의 약자로서 순수한 우리말로 '한국대중가요'다.
<강남 스타일>의 가사를 유심히 들었다. 강남이라는 지역문화가 내세우는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노래 끝 부분에 나오는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베이비, 베이비 / 나는 뭘 좀 아는 놈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 베이비, 베이비 나는 뭘 좀 아는 놈 / You know what I'm saying?"이라는 대목에서 강남이 풍기는 우월의식에 픽, 코웃음이 나왔다.
'style'은 13세기경 고대 불어의 'estile'과 라틴어의 'stilus'에서 유래했는데 말뚝 혹은 막대기라는 뜻이었다. 같은 말 뿌리에서 'stake'나 'stick'이라는 단어들이 나왔다. 그리고 레코드 플레이어의 바늘이나 지진계의 떨리는 바늘 따위를 스펠링도 비슷하게 'stylus (스타일러스)'라 한다. 이 말을 한자로 첨필(尖筆)이라 하는 것 또한 새삼 배웠다.
소위 문화의 첨단(尖端)을 걷는다거나 첨예(尖銳) 시인이나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 '뾰족할 첨'가 들어간다. 다시 말해서 '스타일'은 뾰족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둔하고 뭉툭한 것은 스타일이 없는 법. 머리가 좋은 사람은 생각이 예리하기 마련인데 영어로 똑똑한 사람을 'sharp'하다 하고 우리말에서도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찾을 때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한다.
‘style'을 영한사전에서 찾아 봤더니 방식, 형식, 양식 말고 그냥 영어발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스타일'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싸이가 펄쩍펄쩍 말춤을 추며 전 세계를 매혹시킨 노래 제목을 '강남 스타일'이라 하지 않고 '강남 방식'이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당신도 한번 생각해 보라. 싸이가 "오빤 강남 방식!" 하고 소리치며 노래를 시작하는 장면을... 그쯤 되면 친근한 오빠보다는 고리타분한 '꼰대' 냄새가 나지 않는가?
'강남 형식'은 어떠냐고? 당신은 시방 '모양 형(形)'자를 써 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영어의 'shape'에 준하는 개념을 피력해 보는 건 어떤가. '모양'을 순수한 우리말로 '꼴'이라 하는데 내친 김에 '강남 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뭐? '강남 꼬락서니'도 나쁘지 않다고?
'강남 폼'은 어떨까. 기왕에 영어가 우리말을 무차별하게 먹어 들어가는 시대추세라면 이제는 아주 고전적인 우리말이 돼버린 폼(form)도 '스타일'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들린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오빤 강남 꼴!" 보다 "오빤 강남 폼!"이 더 모양새가 나지 않은가.
'form'은 13세기 초엽의 고대 불어 'forme'와 라틴어의 'forma'에서 기원한 단어로서 모양, 윤곽, 생김새라는 뜻으로 한자로 '모양 形'이 아닌 '모형 型'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바로 이 말에서 formula(공식), format(체제), formal(공식적인), inform(알리다), reform(개정하다) 같은 단어들이 태어났다.
또 있다. 'uniform'은 형용사로 한결같다는 뜻이면서 명사로는 제복이라는 말이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동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경찰이나 군인처럼 유니폼을 입지는 않았지만 지축을 울리며 겅중겅중 말춤을 추는 동작 하나하나가 한결같이 줄기차고 활기차다.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는 한류의 에너지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 서 량 2012.09.10
-- 뉴욕중앙일보 2012년 9월 1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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