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나무, 그늘 시계 / 임의숙

서 량 2012. 9. 29. 20:32

 

나무, 그늘 시계

 

                           임의숙

 

 

푸른 연애의 접힌 반쪽으로

여름은 붉은 얼굴로 돌아오고

나는 여전히 당신이 독신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당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것은

은둔지로 적합한 비밀의 방, 3 시에서 4 시 사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빈 공간에는 상상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의 소리로 은밀함이 부풀어 오르기 때문 

꽃 핀을 꽃아주려 휘파람을 불던 입술이 간지러워

속삭임은 미끄러지듯 달콤해

체리즙의 속살 위에 포개진 다리를

개미는 성지 순례자로 걸었다는데, 새들이 태어나고

그들은 어제의 애인을 잊어버렸다.

 

여치의 구애처럼 당신의 무릎 아래서 나는

늘 잠들려 하지만 그림자 속

돋아난 소름에 떠 밀려 나온다

 

별의 촛불을 꺼 놓은 밤, 달이 촛농으로 굳어지는

그늘 시계 추가 낯설다

가지에 걸린 깃털의 철 지난 새들의 문장을 이해하는 것보다

바삭 마른 당신의 잎새 질감을 더듬기가 더 어렵다

매달린 초침들이 붉게 타 오르다 떨어진

시간들은 그늘의 심장을 긁다 사라질 것인데

발성법을 모르는 나는 쉰 목소리로 가을을 넘는다

당신은 곧 유리구두를 신게 될 거야! 신데렐라가 말하겠지

당신의 시계 추가 잠시 멈추는 사이

그들은 뼈 속까지 눈꽃의 문신을 새길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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