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천사를 기다리며 / 임의숙

서 량 2012. 10. 19. 08:21

   


천사를 기다리며

 

                                          임의숙

 

 

전염병이라지, 죽은 자와 산 자들의 모서리쯤 되는 이 계절은

불타는 나무들의 파편들이 떠 다니는 바람은 울렁이다 황달

이 들고 불티 묻은 제복을 입은 우리는 고아 아닌 고아의 발

자국을 닮아갔다 (고독 안에는 엄마 아빠가 존재하지 않아 나

도 나를 잃어 버리고 너도 나를 잃어 버리지) 가끔은 잊고

살았을 빈 방에는 천사와 나란히 누워 두 달을 함께 살았다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갈에는 언니가 칠 하다만 립스틱

자국만 가득했다 꼭 두 해만 살다 갔다는 천사의 붉은 이름 처

럼 한 번도 너의 생을 살아보지 않았다. 생각해도 얼굴 없는

이름은 방 위에 떠 있는 회색의 천장 같아서 더 어둡고 깊은

그리움 속으로 떠나야 했다 꼼지락거렸던 발가락을 만져 주었을

젖은 손가락 온기가 저쪽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므로 멀

지 않은 곳에 군데군데 무덤을 파 놓고 천사를 기다리는 것

시신 없는 무덤 속에 누워 마음껏 울어보는 것 그러다 천천히

노을의 열점이 사라질 무렵 모서리를 지날 때 쓱 스치는 박하

향 짙게 깔린 빈 방에는 어린 달이 한 참을 살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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